본문 바로가기

Exhibition/Review

“사진이든, 그림이든, ” 오종은 김학량 2인전 _ 2012_0307 ▶ 0330


“사진이든, 그림이든, ”
"Whether Photo or Drawing,"

 

오종은+김학량 2인전

찬조출품 이대범

2012_0307 ▶ 2012_0330

 

초대일시 / 2012_0307_수요일_6:00

 

관람시간 / 12:00~7:00pm / 일요일 휴관

 

GAHOEDONG60 _ 가회동60

www.gahoedong60.com
gahoedong60@gmail.com

+82-2-3673-0585

 




      오종은_샘밭길 1_50×100cm_디지털 프린트_2011



       오종은_의암호_50x100cm_디지털 프린트_2011 


 

        오종은_지암골 4_50×100cm_디지털 프린트_2011



조경산수(造景山水)

인간과 그 삶의 흔적이 없는 풍경은 더 이상 우리 주변에서 보기 어렵다. 호수에 발을 담근 채 반 세기 너머 서있는 폐교각과, 먼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고압선 철탑, 들녘 저편에서 다가오는 아파트 무리, 댐 건설로 생긴 오래된 호수,바퀴자국에 패인 신작로.....
이러한 것들은 이미 우리의 '풍경'(거대도시 서울에서는 이러한 '풍경'조차 보기 어렵다)이 되었고, 나는 춘천에서 만나는 일상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러한 풍경을 보듬고 있다.
무심한 듯 빠른 변화가 진행되는 '일상'과, 지금 만큼이나마 지켜졌으면 하는 '풍경,'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기이한 모습이 지금 우리의 산수가 아닌가 한다.   ■ 오종은







                                                  김학량_노안老眼_춘천 샘밭 근처 제방길을 찍은 사진_11x11인치_2011



                                              김학량_카메라-선禪_'객수산록'을 구성하는 이미지 중 하나_5x7인치_2011




살아볼수록 사는 일은 참 허술하고 엉성하기 짝 없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일이 드물다는 것도 이맘때엔 사실이자 이치로서 수용하게 된다. 한심하지만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예술이라는 발광의 업이라고 뭐 다르겠나-뭐 하는가 싶고, 그럴수록 점점 의심스러워지는 것-사진이든, 그림이든. 나이 먹어갈수록 미혹迷惑은 깊어진다. 해법이있긴 있을까? 이를테면, 지음의 업으로부터 배움의 업으로? 조립의 법으로부터 해체의 법으로? 더부살이에다 빚쟁이 같은 삶, 또 그러할 예술에 대한 자의식을 파국에 이르도록 밀고가기? 글쎄. 흜-?  ■ 김학량
 







                                     이대범_'달이 혼자 남았고, 그러나 그것조차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를 위한 에스키스 _‘75년 안양천을 찍은 사진을 옮겨그린 그림(먹지 드로잉)과,
                                     이미지가 점점 사라지도록 복사한 436장의 복제물_2012


 

오래된 사진에서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40여 년 전 안양천변을 걷고있다. 나는 그가 누군지 모른다. 안양천변을 걸었을 많은 사람 중에 하나일터. 나 역시 삶의 대부분을 안양천변을 걸었으며, 뛰었으며, 스쳐지나갔다.
사진 속 그가 걸었던 풍경을 눈과 손으로 아로 새긴다. 어렴풋하던 그 시간, 그 풍경에 나를 보낸다, 그 풍경에서 나를 건진다. 나를, 나를, 나를,,,,.
그리고 지금. 또 다른 풍경이다. 한 남자가 그리고 내가 거닐던 풍경이 사라졌다, 풍경이 지워졌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지워졌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던 것들의 소리를, 소문을 듣고자 한다.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울이고, 촉수를 세워 매 순간을 몸으로 기록하자.   ■ 이대범 


* “달이 혼자 남았고, 그러나 그것 조차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 김사과, <미나> (창비, 2008) 중에서


 




● 이번 만남을 주선하는 입장에서 한 마디:

 

같이 노는 일도 즐겁고 때로 배울 점이 있는 법. 혼자서는 구축하는 법에 따르지만, 둘 이상이 있을 땐 해체하는 법을 따라야 한다-눈치 보기가 그것. 허물어지면서 일으키기.

작정해둔 목적은 없다. 불즉불리不卽不離의 인연법을 다시 한 번 새기는 것으로 족하다. 김학량은 오종은 주변을 서성거린다. 어딘가를 배회하는 일은 늘 스스로를 뒤흔드는 쪽의 삶-법. 그러다 문득 친구 하나를 불러 같이 놀자 했다. 색다른 문법을 가지고 합석할 터인데 궁금하다. 그런 것이 목적이라면 목적이다.

이즈음에 생각키는 것이, 살아볼수록 풍경을 체험하기가 수월찮다는 점이다. 풍경은 체험할 수 없는 대상:개념:주제:육신인 것 같다. 육접肉接 할 수 없는 육신. 일종의 유토피아이면서, 환멸의 대상. 그러다 보면, 1920년대 육당:노산:지용:백석 같은 선배들이 풍경 앞에 육신을 접던, 결 다른 여러 마음을 떠올리게 된다. 삶의 법이 달라진 만큼 풍경이 우리를 접하는 법도 달라졌을 테지. 허나 이런 건 쉬 변치 못하는 법-풍경을 “얼마나 잘보고 못 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비판하였느냐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라는 점.

사진이든, 드로잉이든, 회화든, 글짓기든, 풍경을 ‘체험’할 수 없는 함량미달의 존재들이, 장쾌하게 내달리는 물줄기 속에서 지푸라기 하나 잡는 일일 뿐이진 않은가 몰라. 그러니 우리가 하는 일이란 기껏해야 어떤 잠정의 이미지나 허깨비:유령:욕심을 베껴내는 일에 지나지 않겠지. 사진寫眞이 아니라 사가寫假. 따라서, 진경眞景을 포기해야 할 때. 그렇게 하면 슬슬, 평소 놓쳤던 질감質感, 풍경의, 그리고 그림:사진:드로잉:개념 들의, 나아가 우리 사는 일-법의 질감을 비로소 의식하게 될런지 몰라.

그래도 풍경은 늘 저만치 내빼고, 우리는 맨날 그 뒤꽁무니만 쫓느라 피곤하다. 빌어먹는 일이다. 

                                                                                                              김학량, 2012. 3. 2, 아침, 서울 월곡동



    * 김기진, 「제6회 선전 작품 인상기」, 「조선지광」, 68호, 192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