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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P by KIM KWANGSIK

 

김광식 展

 

2013. 12. 27 FRI - 2014. 1. 8 WED

 

Opening_2013. 12. 27 FRI  6pm

Closed on Sunday, 1 January

 

가회동60

GAHOEDONG60

www.gahoedong60.com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02-3673-0585

gahoedong60@gmail.com

 

 

 

 

 

 

 


Cropping-오종은_조경산수  watercolor pencil on paper_77x31cm_2013

 

 

 

 

 

그리고 싶다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면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보고 그것과 유사하게 그리려고 노력한다. 대상에 대한 관찰을 끝없이 반복하며 그리게 된다. 이들이 무슨 이유에서 이러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몰라도 무언가를 표현하고 재현하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러다가도 그려야 할 것이 소원해지면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닌 심상까지 표현하기에 이른다. 그 심상은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태어나 미술美術로서 지칭하게 된다. 그려지고 지워지고를 무수히 반복하는 '그리고 싶다’ 라는 충동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심미성은 그려서 마땅한 것을 찾기에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표현의지의 탄생과 깨짐을 일상적으로 반복한 결과이며 사물의 본성을 찾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순간이다. 

문제는 이것들이 결과물로 완성되는 과정이다. 마치, 몸 안의 노폐물이 여러 기관을 거쳐 필요한 영양소만 흡수되고 출구를 통해 빠져 나오듯이 작업 과정 중에 입력된 여러가지 다른 불순물을 자신의 감각에 의지하여 걸러내기 시작한다. 이 과정이 원활하면 최소한의 통로로 걸러지게 되고 마지막 결과물의 순수성 또한 원래 생각하던 심상의 모습과 가까운 형태의 완결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걸러지는 과정에서 타자의 시선에 의해 잘라내기도 하고 더하기도 하는 순간, 원래 지칭된 사물의 본질에서 벗어나 기존의 재현방식까지도 시대에 맞게 끔 변모하여 표현되기도 한다. 이러한 작자의 시각에서 타자의 시각으로 변환되는 시점을 갖게 되는 경험은 자신의 순수한 판단이 결여되기 쉽상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적 자족성에는 위배되나 타자화된 시선을 인정하며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할 때, 작자로서는 고정관념과 실체를 자각하는 경우가 많다. 타의성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작품의 한계성을 경험하는 좋은 수단이자 도구이다.

예술작품에는 타인의 경험이 정교하게 축적 되어진다.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다듬고 잘라내는 게 작가의 임무이기도 하다.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예술의 기능성에 수반되는 필요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광식 작가의 CROP 시리즈는 오종은 사진작가의 풍경 작품들에서 선택한 작품의 한 부분을 차용-확대하여 세밀하게 포토리얼리즘 기법으로 재현한다. 그런 다음, 원작인 사진을 같이 전시하여 드러내놓은 상태에서 김광식 자신의 작품으로 바꾸어 버렸다. 자신의 작품이 아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세밀하게 그리는 묘사 기법으로 사진 자체를 모사해 나아갔다. 미술 기법으로서 현상하고 인화하여 컴퓨터 그래픽을 거치지 않은 아날로그적인 포토샵을 수채 색연필과 손으로 실현하여 재현해 버린 것이다. 

 

 

 

 

 


Cropping-오종은_조경산수  watercolor pencil on paper_18x72.5cm_2013

 

 

 

 

 

미술 이론에서 보여지는 샘플링 아트라든가 차용미술(Appropriation Art)은 근간에 뿌리내려진 현대미술의 속성이기도 하거니와 이러한 부분이 예술이 되느냐 마느냐를 논하기에 앞서 이미 많은 경험치를 습득한 개념미술계의 속성이기도 하다. 유일성을 지닌 미술작품(Masterpiece)의 아우라 문제는 오리지널리티의 한계를 극복한지 오래되었다. 아니, 이러한 문제를 화두거리로 삼기에는 그것을 인정할 만한 근거도 오래 전에 논리적, 심미적으로 어느정도 마쳐진 상태이고 현재 진행형이라 정치적 시비거리도 못 된다. 이것은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서로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당화 된 부분이기도 하고, 타인의 관여가 저자의 몰락과 더불어 작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타인의 경험이 축적되는 것이 이제는 예술의 발전에 커다란 자양분이기도 하다. 타인으로서, 타자로서 관객의 입장에 서서 경험을 축적시키는 일은 정교해야만 만들어질 일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우매한 교묘함’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적 방안이기도 하다. 맞춰지지 않는 이빨 빠진 퍼즐을 펼쳐놓고 맞추겠다고 우기는 것보다는 못 맞추는 퍼즐이니 못 맞춰질 것을 인정하고 이 빠진 상태로 내버려 두고 완성하는 것이다. 부재된 무엇인가는 오히려 존재를 증명한다. 이것이 아무도 모르게 되는 미완의 상태로 진행되면 ‘모든 것을 전부 갖추고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상태보다 훌륭해 질 수 있다.

예술성의 의미를 되새겨 볼만큼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적인 순간에 경험한 그 무엇을 보존하게끔 하고, 보존 방식의 차이가 여러 가지 모습에서 읽혀지기를 원하는 일반 대중의 요구와 취향성이 미술의 역사성을 고취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의 작품이 정교한 그림이 되던지, 아니면 사진처럼 보이는 미완성의 작품이 되던지 간에 미술 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 보면 아름다울 ’미'자에 기술 ‘술’자를 쓰는 美術은 항시 인간의 감각 시스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미술이 사물의 모습을 객관화 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다면 미술가는 시각적으로 그것을 잘 도려내어 편집하는 기능을 갖춘 특혜 받은 자들이다. 
실재를 가지고 특허를 내는 일 - 이것이 바로 미술가의 일이며 임무인 것이다. 김광식 작가는 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미술이 화가와 사진가라는 전문가로서의 직업관으로 구분되어지기 보다는 여러 방면에 걸친 멀티플레이를 경험하여 무엇인가로 만들어내는 작자-저자로 읽혀지는 현 시점에서는 해야 할 일도 무궁무진하다.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장식하고, 비춰지는 조명에 온몸을 드러내야 할 뿐만 아니라, 세상과 타협을 거부하는 자로서 존재하던 기존의 예술가 보다는 적당한 타협점을 읽을 줄 알고 노동자로서의 예술가로도 자신을 대치시켜 봐야 한다. 정치적 예술의 형태가 그러하다. 기존 예술계의 헤게모니가 가지는 속성을 과감히 뿌리치고 부정할 근거도 만들어봐야 한다. 이것은 예술가에게 부과된 반골정신의 특권이기도 하다. 기존 헤게모니를 싫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가장 긍정적인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 긍정의 힘은 부정을 포함하고 열린 태도로서 이동하여 예술을 정치화 시키기도 한다. 

 

 

 

 

 


Crop-칼치 오마쥬_Watercolor pencil on paper_9.5x141cm_부분_2013

 

 

 

 

 

김광식 작가는 기존 예술계와 다른 축에 의존하여 홀로 서 있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사물의 본질이나 본성, 또는 현재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단순한 삶의 의지나 철학으로서만이 아닌, 자신의 의지가 투영되는 현대미술의 언저리를 보이려고 한다. 그의 의무일 수도 있겠다.
사실, 그리던 걸 전부 뒤집어 엎고 산으로 들어가도 아무도 모를 작가이고 그게 이상하지도 않을 작가이다. 허나 이 작가를 알려고 하면 깊어지며 반골의 늪에 빠지게 된다. 잣대를 들이대고 규칙을 적용시키는 작가적 비평의 의지로서가 아니라 단순한 삶에 대한 짧은 고찰로서만 존재해도 어울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 작가가 무엇을 그리고 표현하려던지 간에, 상대적인 것과 비상대적인 것 아니면 차갑거나 뜨겁거나 둘 중의 하나를 자신의 언중으로 드러내는 심플한 작가란 얘기이다. 그렇다고, 평 문맥의 행간으로 읽히며 자신의 의지를 져버리는 작자는 더더욱 아니지만 복잡성을 가질 만큼 어려운 작가도 아니다. 하여간에.. 무언가를 계속 드러낼 부분이 조금 이라도 있으면 심심치 않게 만들어낼 ‘작자'이다. 

그리고 싶은 그 무엇이 평생 지속되는 ‘화가畵家'들은 풍요롭진 않지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동시에, 표현된 지점을 드러낼 줄 아는 ‘작가作家'들도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모두를 재현시킬 의지를 지니며 재현하고자 욕망을 꿈꾸는 이들은 ‘작자作者’로서의 인생여정을 걷는다.
예술가들은 정신과 몸뚱아리를 통째로 담보 잡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심미적인 부분을 채워주기 위한 도구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시대의 물음에 대답하고 부정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업보를 극복해야 할 숙명도 지니고 있다. 

예술은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일상의 진정한 가치에 경의를 표하는 힘이 있다. 이러한 예술성의 본성을 실현시킬 의지가 분명한 자들, 그 '작자’들이, 작가 김광식이 풀고 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내고, 자르고 싶은 것을 잘라내고… 좋은 것을 좋다고도 하고, 싫은 것은 싫다고 얘기해야 할 때가 더 많아질 것이다. 
 

 

- 가회동60 디렉터 손진우

 

 

 

 

 


Crop_103x77cm_paper_2013

 

 

 

 

 

 

 

 

 

답이 없거나 대안이 없더라도 
삶의 방식은 저마다 가지고 있고, 인생의 방향은 어디로든 흘러간다.

나이 사십 중반은
새로운 것은 없다는 걸 씁쓸하게 인정하게 되고
더이상 새로울 것 없는 일상사에서, 애처롭지만 은근히 적극적으로,
새롭다고 생각 되어지는 것을 발굴해간다.
진부한 형식의 틀을 바꾸는게 아니라 형식의 틀을 인정하면서,
요리조리 피해가며 눈치채지 못하게 이리 비틀고 저리 비뚤어지며
얄밉고 가볍게 살아 갈 수 있는 경험치를 스스로 체득하게 되는 것이며, 
흔히 얘기하는 '꼰대'의 틀을 서서히 갖춰가는 것이다.

꼰대가 되어 늦었다고도 할 수 없고 이르다고도 할 수 없는 
첫번째 개인전인데 오랜 게으름의 습관을, 입주변의 버짐처럼
어쩔 수 없는 천성으로 타고 난지라,
어렵게 튕겨져 나온 경제적 일탈을 십분 활용하지도 못하고 긴 시간을 허비한 뒤,
전시를 로션 삼아 얼굴에 덕지덕지 발라본다.
그래, 각질인지 버짐인지 구분 할 수 없는 두꺼워진 얼굴에서 뻔뻔함이 묻어나올때
나는 드디어 제대로 된 꼰대가 되는것이리라.

로션을 바를 때에만 사라지는 버짐처럼 이번 전시가 끝나면 다시 버짐이 피고 로션을 바를 날이 오겠지.
그땐 정말로 로션을 일찍 바르리라 다짐해본다. 아니다 로션을 안발라도 될 만큼 피부관리를 잘 하리라.

이번 전시는 누가 뭐래도 뻔뻔함이 오롯이 묻어 있는 꼰대의 얼굴에 피어난 버짐이다.

- 김광식 작가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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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DE _ 環生圖

 

2012_0918 2012_1008

 

참여작가: 김광식_윤영아_정용훈_정해진_천지현_황경택

기획: DESIGN60

 

초대일시: 2012_0918 오후 6

개관시간: 오후12-7 / 일요일, 추석연휴 29,30 휴관

후원: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가회동60 _ GAHOEDONG60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www.gahoedong60.com

02-3673-0585

 

 

 

 

 

 

 

 

 

환생도

작가노트에서 김광식 작가는 이번 전시를 이렇게 표현했다.


옛날에 그려진 동식물과,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현재의 그것들과의 만남, 『환생도』

이 한 문장에 CODE 기획전 『환생도 生圖』의 모든 것이 녹아 들어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 선조들의 옛 그림에 등장하는 생물들을, 생태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의 시각으로 재 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2010년부터 꾸준히 생태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CODE의 멤버들은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재미있는 발상을 내었다. ‘오래된 민화에 나오는 생물들은 과연 실재하는 것들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종은 무엇이었으며 지금도 현존하는 생물인가?’ 하는 데서 시작한 생각이었다. 

 

환생[1]이라는 단어는 약간의 종교적인 색채를 띄고 있지만,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윤회나 환생 등에 관심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동물들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선조들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생물들을 환생시켜 보자는 의도 아닌 의도가 들어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환생은 還生이 아닌 ㅡ환경과 생물ㅡ이다. 환생은 환생이되, 환경과 생물의 환생이다. 이것이 이번 전시의 외형적 패러디[2] 이다.

 

 

생물들을 환생시키기 위해 작가들은 진채, 수묵, 수채, 아크릴, 색연필 등의 세밀화, 펜을 사용한 만화 등 다양한 기법을 이용했다. 뿐만 아니라 그림의 형식도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생물들을 자신의 색깔로 재현하였다. 이러한 장르와 재료의 선택은 이번 전시의 내면적 패러디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는 고고하며 청초한 선비의 삶을 수묵으로 한 붓에 그려내어 단순미를 극대화 하였지만 황경택은 「일상 속 세한도」시리즈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집과 자연의 관계를 해학적이고 익살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만화의 형태로 직접적으로 패러디를 사용한 경우도 있으나, 다른 작가들은 간접적 패러디를 차용하였다. 부귀영화를 불러들이기 위해 집안에 모셔두던 모란도를 21세기에서는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의문을 정해진은 「신모란도(丹圖)에서 벽지의 무늬처럼 사용하여 부와 명예의 덧없음을 자유롭고 화려하게 그려내었다. 봄이 오는 것을 상징하여 기쁨의 의미로 그려지는 나비. 남계석의 「석화접도대련(石花蝶圖對聯)」의 그들을 윤영아는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나방으로 대체하여 「석화아도대련(石花蛾圖對聯)」이라 이름하였다. 나방이라고 해서 나비보다 생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나비를 보았을 때와 나방을 보았을 때 취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나방이라고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을까! 작가는 이를 세밀화로 표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자문하게 한다. 정용훈은 장승업의 「호응도(豪鷹圖)」를, 천지현은 김홍도의 「화조도(花鳥圖)」를, 김광식은 「해탐노화도(解貪蘆花圖)」를 나름의 색채로 그려내고 있으며 한 붓에 그려내는 옛 선조들의 미니멀리즘에 반기를 들 듯 세밀화로 표현하여 장식미를 강조하였다.

 

패러디의 기능은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연결지어 원본의 재현을 통해 그 히스토리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원본의 영속성을 지켜주는 것이다. 또한 패러디가 연결되어 개연성을 갖게 되면 그 자체가 하나의 구조를 가지면서 작품으로 승화되기도 하고 이것이 미술의 사회기능적인 역할로 발현되면 문화구조를 바꿔버리기도 한다. 요즘 영화계에서 숱하게 만날 수 있는 프리퀄 무비가 이를 대변한다. 일반적 전시가 전시이전의 전시ㅡ또는 전시이후의 전시로 발전되면 영화에서 쓰이는 기법을 또 다른 양상으로 미술계에서 실현 가능케 할 수도 있다. 기획자는 이점에 집중했다. 미술의 서사구조를 대중적 코드로서 인식하게끔 하려는 의도로 이런 것들이 쌓여 문화 생태계의 다양성을 존속시킨다고 굳게 믿는다.

옛 그림 속 생물의 재현. 생물을 표현하는 작가들의 모임이 지속되며 이에 미술적 가치를 더하고 그들이 자신의 작품을 시각적 유희로 풀어나가며 발전할 수 있도록 CODE 『환생도 生圖』전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 ■ DESIGN60

 

 


[1] 환생(還生) ① [명사] 1. 다시 살아남. 2. 죽은 사람이 다시 태어남.  죽은 생명체가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불교에서 윤회라는 말과 함께 자주 쓰인다. 현재까지 환생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례는 없다.

[2] 패러디(parody) [명사] [문학]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수법. 또는 그런 작품.

 

 

 

 

 

<Pictures of Reincarnation> by DESIGN60

 

Artist Kim Kwang Sik expressed this exhibition in his note as follows:


“An encounter of animals and plants drawn in old times with those in the present which are different but not different, Pictures of Reincarnation

 

Everything of CODE’s Project Exhibition, Pictures of Reincarnation is merged into the above phrase. This exhibition displays works that reinterpret creatures appearing in old paintings by the ancestors in the perspectives of artists who draw eco-paintings. The members of CODE, who are active in various fields and have continued to exhibit eco-paintings since 2010, came up with an interesting idea while planning this exhibition. It was an idea starting from the following questions, “Did creatures appearing in old folk paintings really exist?” and “if so, what were the species and do they exist even now?”

 

The word, reincarnation[1] assumes a little religious tinge; however, everyone, if not a Buddhist, might have been interested in samsara or reincarnation at least once. This exhibition focuses on animals rather than humans, intending to reincarnate the creatures appearing in the ancestors’ paintings. And yet, reincarnation in this exhibition is not ordinary reincarnation but the environment and life—homonyms pronounced the same; Hwansaeng in Korean. It is reincarnation, but that of the environment and life. This is an external parody[2] of this exhibition.

To reincarnate the creatures, the artists used various techniques such as miniatures using deep-color pigment, Indian ink, watercolor, acrylic paint and colored pencil, and cartoons using a pen. In addition, in terms of the forms of the paintings, the creatures were represented with their own colors, not simply duplicated. The selection of genres and materials, I think, serves as an internal parody of this exhibition. Kim Jeong Hui’s Sehando (A Painting of the Bitter Cold around the Lunar New Year) maximized simple beauty drawing the life of a solitary and elegant classical scholar with a stroke of a brush and Indian ink while Hwang Gyeong Taek shows the relationship between houses and nature humorously and comically in Sehando in Everyday Series.

 

There are some direct parodies in the form of cartoons; however, other artists borrowed indirect parodies. Jeong Hae Jin drew the transience of wealth and fame freely and splendidly using the question of how to express Morando (A Painting of Peony Blossom) placed in the house to summon wealth and honor in the 21st century in Shin Modando (A New Picture of Peony Blossom) like patterns on the wall paper. Butterflies drawn in the sense of joy symbolizing the coming spring in Nam Gye Wu’s Seokhwajeobdo Daeryeon (A Painting of Stones, Flowers and Butterflies) , which Yoon Yeong Ah replaced by moths often seen around and named it Seokhwaahdo Daeryeon (A Painting of Stones, Flowers and Moths). Although moths do not lack values as a life compared to butterflies, our attitude toward them differs from that toward moths. Is there any law that prohibits moths from being used as a subject of a work! The artist causes the viewers to ask themselves by expressing this in a miniature. Jung Yong Hoon draws Jang Seung Eob’s Hoeungdo (A Picture of The Head Falcon), Cheon Ji Hyeon draws Kim Hong Do’s Hwajodo (A Picture of Flowers and Birds), and Kim Kwang Sik draws Haetamnohwado (A Picture of Crabs holding Reed Flowers) in their own way, and as if they revolted against the ancestors’ minimalism of drawing with a stroke of a brush, they emphasized decorative beauty by expressing in a miniature.

 

Parodies function as empowering history through the representation of the original copy linking heaviness to lightness: saving the permanence of the original copy. Also, as the parodies are connected and come to have probability, they themselves come to have a structure and are sublimated as a work of art, and if they are expressed as the socio-functional role of art, they sometimes change cultural structures. Prequel movies that can often be encountered in the film world represent this. If an ordinary exhibition develops to one before exhibition or one after exhibition, the techniques used in films can be embodied in the world of art in another aspect. The planner focused on this. I firmly believe that with an intention to make people perceive the narrative structure of art as popular code, these things pile up and retain the diversity of cultural ecosystem.

 

Representation of the creatures in old paintings: I hope that you will have a lot of interest in and support for CODE’s Exhibition, Pictures of Reincarnation, so that the meeting of the artists who express creatures continues, they add up to artistic values, and they develop themselves while resolving their works by visual amusement.



[1] Reincarnation: [noun] 1. To be reborn, 2. Rebirth of the dead. A dead life is born again, which is often used with samsara in Buddhism. Up to now, reincarnation has not been proved scientifically.

[2] Parody [noun] [literature] A technique that expresses mimicking the subject matter of a particular work or the style of another writer comically, or such a work.

 

 

 

 

 

 

 

좌_김홍도_해탐노화도(解貪蘆花圖)_ 23x27.5cm_18세기-19세기초_간송미술관 소장

우_김광식_해탐노화도_44.5x54cm_종이에 연필, 색연필_2012.jpg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누구나 한번쯤 했었을 생각들 중 하나. 저 강물은 어제의 강물이 아니고, 지금 흐르고 있는 강물 또한 이 순간이 지나면 과거의 강물이 되겠지 라는, 허무하면서 자조적이되, 반대로 지금의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힘을 주기도 하는 그런 생각들......

 

저 옛날 어느 환쟁이나 문인의 눈에 들어 그려졌었던 동물이나 풀들은 오늘의 그것들과는 다르면서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순간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 앞서 얘기했던 흐르는 저 강물의 매 순간과 같지 않은가? 다르면서 다르지 않은......물과......

 

작년(2011) 어느 계절쯤이라 기억되는데, 황경택이도심 속의 사군자라는 재미있는 제안을 했었다. 옛날의 사군자는 그들 시대의 개념이 부여된 식물들이었고, 지금의 우리들은 우리에게 맞는 현재적 개념이 부여 된 식물 또는 생물로 다시 표현되어도 재미있지 않겠냐 라는 말. 이 제안이 이상한(?) 경로를 타고 서로 부딪고 깨지며 다시 접합되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다. 물론 아직은 미완의 형태이지만. 그리고 얼마 전 이번 전시의 제목을 서로 골몰하던 중, 천지현이환생도라는 말을 꺼냈다. 잘 어울리는 말이다.

 

환생, 돌고 도는 죽음과 탄생. 어느 것이 죽음이고 어느 것이 탄생인지,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나중인지는 중요치 않은 현재성을 가진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여러 작가들에게 동의를 구했고, 약간 명의 암묵과 약간 명의 동의로 어물쩡 결정이 되었지만 사실 그게 무어 그리 중요한가.

 

옛날에 그려진 동식물과,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현재의 그것들과의 만남, ‘환생도

 

어쨌거나 오래 전 그들의 그림이 우리들에 의해 다시 환생(혹은 환기)되어도 좋고, 우리들의 그림으로 인해 예전 그들의 그림이 환기(혹은 환생)가 되어도 좋은데, 그로 인해 생기는 무게감이나 책임감은 차치하더라도, 무지하게 세밀하게 그려야 한다는 이유가 그리는 이들에게 두통과 어깨 결림 혹은 예견된 사십견, 단순 시력 저하인지 노안인지 구분되기 어려운 증상으로 인한 돋보기 사용 등으로 치환되어 나타나는 사태가 예상되어 안쓰러움을 금할 길이 없으므로 심심한 위로를 미리 전하는 바이다. ■ 김광식

 

 

Kim Kwang Sik

One of thoughts everyone had had looking at a flowing river. The river is not that of yesterday and the river flowing now also will become that of the past after this moment......, such thoughts that are futile and self-mocking, but strengthening us so that we can live the present moment faithfully......

 

A thought that the animals or grasses drawn being daubers or literary persons in old times express lives in another moment which is different but not different from them today. Is it the same as every single moment of the flowing river mentioned above? Different but not different…… from river water......

I recall it was in a season last year, 2011, Hwang Gyeong Taek made a fascinating proposal of ‘The Four Gracious Plants in the Urban Center.” A comment that the Four Gracious Plants in the past were plants to which the concepts of their age were granted and wouldn’t it be fun expressing the plants or creatures to which the present concepts suiting us again for us now? This proposal appeared in a certain image after getting on a weird path and bumping, breaking and knitted all together again. Of course, it is not complete yet, thought. And lately, when I was immersed in giving a title to this exhibition with each other, Cheon Ji Hyeon brought up ‘Pictures of Reincarnation.’ That suits it well.

Reincarnation, circulating deaths and births! I came to think that it was a word by which it is no longer important, which is death and which birth or which comes first and which later. I thought it had newness. So I sought for agreement from several artists, and it was decided with some silence and some agreement evasively, but in fact, is it that important?

 

An encounter of animals and plants drawn in old times with those in the present which are different but not different, Pictures of Reincarnation

   Anyway, it is good for us to reincarnate (or recall) their paintings in old times and it is good for their paintings to be recalled (or reincarnated) by our paintings, but setting aside the weight or sense of responsibility arousing from that, I offer my heartfelt consolation in advance since I cannot repress pity as I expect a situation in which the fact that they should draw them extremely in detail may appear substituted by their headache, shoulder discomfort, predicted frozen shoulder or use of magnifying glasses due to a symptom that is not discernible between a simple loss of vision or presbyopia.

 

 

 

 

 

 

좌_남계우_석화접도대련(石花蝶圖對聯)_간송미술관 소장

우_윤영아_석화아도대련(石花蛾圖對聯)_100x30cm_종이에 아크릴,먹,진채_2012.jpg

 

 

 

 

나비를 나비답게

 

일호 남계우(1811-1890)의 그림 속에는 당시의 나비들이 가득하다. 생물학적인 분류가 가능할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역동적으로 날아다니는 나비의 모습을 포착하여 그림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나비에 대한 그의 관심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짐작케 한다. 오늘날처럼 카메라 등의 다른 장비 도움 없이 오로지 대상을 직접 육안으로 관찰하고 특징을 살려 그것을 그것답게 그려내는 것. 1800년대 조선을 날아다니던 나비는 그렇게 그림으로 남겨져 있다.

 

나비()를 나방()으로

 

석화접도(石花蝶圖)대련 중 한 폭을 선택하여 나비를 나방으로 바꿔 그렸다. 어떤 작품을 어떻게 그려낼까 고민하던 중에 그의 나비그림을 나방으로 바꿔 그려보면 어떨까 싶었다. 나방은 나비만큼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곤충이다. 그림의 상단부터 순서대로 가중나무고치나방, 옥색긴꼬리산누에나방, 흰무늬왕불나방, 두줄제비나비붙이, 왕물결나방, 점박이불나방이다. 석화아도(石花蛾圖)인만큼 밤에 피었다 아침에 시드는 달맞이꽃을 그려 넣었다.

 

그림 속 1800년대의 나비를 2000년대의 나비로

 

그의 작품 '화접도_근역화휘 인첩' 속의 나비 중 제비나비, 호랑나비, 왕세줄나비, 청띠신선나비의 그림 위에 실제 표본을 꽂아 당시를 살던 나비를 재현했다. ■ 윤영아

 

 

 

 

Yoon Yeong Ah

Making butterflies butterflies-like

Ilho Nam Gye Wu (1811-1890)’s paintings are full of the then butterflies. His works that express butterflies so minutely that they can be classified biologically and capture the looks of butterflies flying dynamically allow us to guess how much his interest in butterflies was. Without any help of other devices like camera today, drawing an object by observing with the naked eye himself as it was: The butterflies flying in Joseon in the 1800s remain in the pictures.

 

Butterflies replaced by moths

I selected and drew a picture from Seokhwajeobdo Daeryeon changing butterflies with moths. Concerned about what I would draw and how to do it, I thought how about drawing moths instead of butterflies in his pictures. Moths are insects as splendid and beautiful as butterflies. From the top of the picture, Samia cynthia, Actias gnoma mandsahurica, Aglaeomorpha histrio, Epicopeia menciana, Brahmaea certhia and Agrisius fuliginosus. I drew a sundrops that blooms at night and withers in the morning since it is Seokhwaado.

 

Butterflies of the 1800s in the paintings to those of the 2000s

Among the butterflies in his work, Hwajeobdo Geunyeokhwahwi Incheob, I reproduced those living then, by actual specimens on the pictures of Papilio bianor, tiger swallowtail, Neptis alwina and Nymphalis canace.

 

 

 

 

 

 

좌_오원 장승업_호응도(豪鷹圖)_129x34.5cm_비단에 수묵담채_19세기

우_정용훈_호응도_129x34.5cm_종이에 아크릴릭_2012.jpg

 

 

 

 

 

 

 

吾園으로부터

 

시대를 넘어 예술적 행위나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일반적이거나 상식적인 사고의 영역의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태생적으로 비현실적인 관점과 논리로 무장되어 분석되기 싫어하는, 그러나 헤아릴 수 없는 매력의 다양함과 에너지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으로 각 시대를 풍미하였을 것이다..

 

옛 그림에 대한 고찰과 분석을 주제로 한 이번 환생도 전시를 준비하며 나는 오원의 생각을 엿보려고 무단히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과연 오원은 무슨 생각과 집착이 그 수많은 새와 동물을 그리게 하였는지, 백 년이 훨씬 넘는 과거에 뛰어난 필력과 예민한 관찰력만으로 그 많은 생물을 표현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에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나 역시 오원과 일맥 유사점이 있어 보인다.

이것은 단순히 그리는 기술적 행위에 매력보다는 그것을 수단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려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모든 작가(화가)가 다양한 자기 관심사에서부터 작업이 출발하지만, 회화의 입장에서 그린다는 행위, 다시 말하자면 사실적으로 잘 그린다는 것은 단지 원하는 목표점에 다가가기 위한 수단일 뿐 그것이 회화의 본질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작가(화가)는 그림 한 점을 그리기 위해 꽤나 뛰어난 기술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보다 다양한 세상을 일면을 볼 수 있는 기회일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항상 생물에 대한 경이로움과 지적 호기심에 사로 잡혀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새들은 어떻게 날고 어디로 이동하는지 살기위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진화했는지, 곤충들의 변태는 어떻게 일어나고 그 화려함은 원천은 무엇인지,,

이런 소소한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 속에 보잘 것 없는 나의 수단으로 이들의 놀라운 생존의 비밀들을 많은 이들과 즐기고 싶다.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영원한 소재의 원천으로 마르지 않는 샘이기에....

 

나는 오늘도 그런 재미를 찾아 작업실과 들판을 들락거린다... 오원도 그랬을 것이다...  정용훈

 

 

 

Jung Yong Hoon

 

From Oh Won

 

At all time, people who create artistic actions or their products probably might not live a life belonging to the area of ordinary or common thoughts. Their unwilling-to-be-analyzed but immeasurable variety of attraction and energy armed with inherently unreal perspectives and logic might sweep each period with a motive that sustained human life.

 

While preparing for this Exhibition, Pictures of Reincarnation with the theme of considerations and analyses on old paintings, I might be concerned to peep Oh Won’s thoughts constantly: What on earth thought and obsession made him draw the numerous birds and animals?

 

He must have been a great figure then only with his expressions of the numerous lives by the excellent power of a brush stroke and sharp observation more than 100 years ago. In the same vein, I may have something in common with Oh Won. I think he had something more than simple appeal with the technical actions of drawing by which he attempted to express and deliver. Of course, every artist (painter) begins work from his/her interests, though.

 

From the point of view of painting, drawing something well, in other words, drawing that realistically is just a means to approach a desired goal, not the essence of it. It seems that an artist (painter) exhibits quite superior techniques to draw a picture; however, on the flip side of that, if one tries to understand what the artist attempts to say, he or she can get a chance to see one side of more diverse worlds.

 

I may spend everyday life captured by the wonders of living things and the intellectual curiosities about them all the time: How birds fly, where they move to, what they eat to live, how they have evolved; and how insects’ metamorphosis occurs and what is the source of their splendor.

 

In the pleasures of getting to know these trivial things, I would like to enjoy their secrets of wonderful survival with many others by petty means of my own; since nature to artists is an eternal origin of subject matters and a fountain that never dries up....

 

Today I come in and out of my workship and the field seeking for such fun... So did Oh Won...

 

 

 

 

 

 

 

좌_작자미상_괴석모란도병(怪石牡丹圖屛)_8첩 병풍 중 2폭 각 231x54cm_비단채색_19세기_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우_정해진_신모란도(新牡丹圖)_138x118cm_종이에 채색_2005_부분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영원히

모란(牡丹)꽃중의 왕’(百花王)이라고 한다. 흔히 서양의 장미와 비교되며 부귀한자의 꽃으로 여겨진다. 이는 탐스러우면서도 기품 있는 꽃의 자태에 기인한 이유도 있지만, 송대(宋代) 주돈이周敦(1017-1073)애련설』에서 국화는 꽃 중의 은일, 모란은 부귀, ()은 군자에 해당하는 것이라 정의한 이후 그 인식이 보편화 되었다.

궁중에서는 모란의 상징성으로 인해 국가와 왕실의 위의에 걸맞은 장식성과 의례성을 겸비한 그림으로 각종 의례의 격식에 어울리는 도상으로 창안되어 그 쓰임의 폭이 넓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을 좋아하는 것은 호명(好名)일 뿐, 마음의 본성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성대하고 화려한 모란을 좋아하고 즐기면서 치장과 격식의 실용화로서 부귀와 영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충족시켜주었다.

새로운 시대와 함께 다시 태어난 <모란도>는 옛 그림에서의 왜곡되고 도식화된 형식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로운 방식을 취하고, 모란꽃의 생태(生態)에 맞추어 화려함을 더하였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조선시대 사대부들처럼 집안 가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하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사대부들과 우리들의 시대는 다르지만, 꽃 중의 왕인 모란도가 지닌 부귀영화라는 보편적인 상징성을 갈망하여 그 욕망을 그림으로 남겨두고 대중적으로 즐겼던 것은, 이러한 욕망이 시대가 변해도 인간 본연의 염원인 부와 명예는 곧, 물위의 거품이요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아 한 순간에 허망하기 그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정해진

 

 

 

Jeong Hae Jin

Permanent wealth and honor…

Peony blossom is called ‘a king of flowers.’ Often it is compared to the Western rose and considered a flower of a rich and honorable person. This is because of its attractive and graceful figure, and since Zhou Dunyi (1017-1073) in Sung dynasty defined that ‘chrysanthemum corresponds to seclusion, peony to wealth and lotus to a man of virtue in Love of Water-lily, the awareness has become generalized.

In the court, because of peony’s symbolic meaning, it was created as an icon suiting a variety of rituals and formalities drawn into pictures having decorativeness and formal character appropriate for the solemn manner of the state and royal family.

While people said that it was just favor of honor that noblemen in Joseon dynasty liked peony, a symbol of wealth and honor, not the nature of their heart, they like and enjoy grand and splendid peony, which satisfied their wishes for wealth and honor by their utilization in decoration and formalities.

Shin Morando born again with the new age took a liberal style breaking away from the distorted and schematized forms in the old picture, and added elegance suiting the ecology of peony blossom. There is not a big difference in our wish for enjoying wealth and honor filling the house while we live in the 21st century from noblemen in Joseon dynasty. The noblemen’s age and ours differ; however, they kept the desire of the universal symbolism of wealth and honor that a picture of peony blossom, the king of flowers, had, and enjoyed it freely because they were well aware that this desire for wealth and honor, their natural wish, like bubbles on water and pearls of dew on the grass, would disappear in a moment, weren’t they?

 

 

 

 

상_김홍도_화조도(花鳥圖)_26.7x31.6cm_종이에 담채_18세기_호암미술관 소장

하_천지현_화조도_27.2x32cm_종이에 수채물감,먹,진채_2012

 

 

 

 

 

 

 

 

오래 전부터 지구상의 수많은 종류의 생명들은 태어나고 죽고를 반복하며 지금까지 대를 이어왔다. 조선시대 화가의 눈을 통해서 그려진 여러 생명체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조상들은 당시의 동식물들을 관찰해 위대한 그림을 탄생시켰고 그들의 후손인 우리가 그 그림 속 생명체들의 후손과 함께 현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환생도' 전시에서 조선시대 명화 속에 나타난 생명체들과 화가의 숨결이 오늘에 아우르는 그림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지켜 내려온 우리문화의 고유성을 잃거나 소홀한 것이 많다. 미술계도 동양화 보다 서양화의 기법이 우위를 점하고 그만큼 접근성도 쉽다. 심지어 학교의 교육과 미대의 입시도 서양화법에 더 치우친다. 본인도 그런 환경에서 미술을 전공하면서 서양화법이 익숙하지만 어려서부터 동양화의 고유한 미와 기법을 공경해왔고, 동서양화의 기법과 느낌을 혼합한 그림을 그려보고자 노력해왔다.

그런 나에게 이번 전시를 위한 작업은 매우 흥미롭고 즐겁게 다가왔다. 천연의 재료인 동양화 물감과 먹, 그리고 수채물감을 함께 썼고 옛 그림 속의 새와 같은 종류의 새를 지금의 나의 시각에서 세밀화 기법으로 표현하고 배경에 나타난 옛 화가의 마음을 재현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조선시대 화법과 나의 화법, 생명의 연속성이 한 화면에서 어우러져 그 의미를 담고자 하였다. ■ 천지현

 

 

 

 

Cheon Ji Hyeon

Since long ago, lives in numerous species on the earth have repeatedly been born and dead carrying on family lines till now. Various creatures also are the same, which were drawn through the eyes of painters in Joseon dynasty. The ancestors produced great pictures while observing animals and plants at the time, and we, their descendants coexist the descendants of the creatures in the paintings.

In that sense, I tried to express pictures that embrace the living things in the famous paintings and the painters’ breaths in Joseon dynasty in this exhibition, ‘Pictures of Reincarnation.’

We have lost or are negligent much of the peculiarities of our culture that has been carried over for a long time. In the world of art, Western drawing techniques get the upper hand over Oriental ones and are easily accessible. Even school education and art college entrance examination are inclined to Western drawing techniques. I am used to Western drawing techniques while majoring in art in such an environment; however, I have respected the peculiar beauties and techniques of Oriental paintings since young and made efforts to draw pictures mixing Western drawing techniques and feelings with Oriental ones.

To me, works for this exhibition were very exciting and pleasant. I used Oriental drawing paints and ink, natural materials with water colors together, and tried to express birds in the same kind as those in the old paintings from my point of view in a miniature technique and to put the meaning of the past and the present, Joseon drawing techniques and my techniques, and the continuity of life mingled in one canvas by reproducing the old painters’ mind shown in the background.

 

 

 

 

상좌_추사 김정희_세한도(歲寒圖)_23.7x61.2cm_17세기_국보180호 개인소장

상우,하_황경택_일상속 세한도-담쟁이,아픈나무,타버린나무_21x29.7cm_종이에 수채,펜_2012

 

 

 

 

 

 

 

좌_혜원 신윤복_청금상련(廳琴賞蓮)_35.3x28.2cm_종이에 수묵채색_18세기_간송미술관 소장

우_황경택_짝짓기_33x23cm_종이에 수채,펜_2012

 

 

 

 

 

옛 그림을 그린 우리 옛 화가들의 그림은 정말로 빼어나고 수려하고 화려하고 소박하고 고졸하기도하면서도 필력이 담겨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면서도..뭔가 더 이상 다가가기 어려운 벽을 느끼게 한다. 대단하다는 감탄과 함께 함부로 범접하기 어려움도 같이 따라오게 된다. 과연 그 당시 그들도 그 그림을 그리면서 그랬을까? 대중들이 차마 범접하기 어려워하길 바랐을까?

 

옛 그림만이 아니라 화가의 그림에 대중들이 감탄을 하면서도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꾸 스스로도 그림을 그리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만화가다. 만화는 한편으로 만만한 그림이다. 하지만 그 만만함 속에는 번뜩이는 찰나와 같은 풍자와 해학 그리고 킥킥하고 웃는 웃음도 담겨있다. 나는 그런 그림이 좋다.

 

쉽게 보고 쉽게 그리고 쉽게 웃어줄 수 있는 그림. 오늘 감히 옛 화가의 그림을 웃음의 소재로 전락시켜본다. 하지만 그 안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겨있으니 부디 오해와 욕들 사이에 그 이야기도 찾아내보는 재미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림을.. 그리고 자연을 보다 친근하게 느꼈으면 하는 것이 이번 전시에서 내 바람이다. ■ 황경택

 

 

 

Hwang Gyeong Taek

The paintings of old Korean painters are really excellent, beautiful, simple and old-fashioned, and have a power of a brush stroke, which make us say ‘wonderful,’ voluntarily. But at the same time, they make us feel a wall which we cannot approach easily. Dignified difficulties come along with admirations of their intensity. Did they really feel the same way when they were drawing the pictures? Indeed, did they hope that the public would have difficulties in approaching them?

I hope that the public will think, “I might be able to do it, too” while admiring the painters’ pictures as well the old pictures. So, I hope that they will frequently draw pictures themselves.

I am a cartoonist. Cartoons are easy paintings in a sense. But in the easiness, there are sparkling momentary satire, humor, and giggling laughter, too. I like such paintings.

A picture easily seen and laughed at: Today, I dare degenerate old painters’ pictures to the subject matters of laughter. However, since they have stories to tell, please enjoy the fun of finding out the stories amidst misunderstandings and criticisms.

I hope that people find the pictures… and nature more familiar through this exhibition.

 

 

 

 

 

 

 

 

 

<환생도(環生圖)> 전시에 대한 단상

 

오늘날의 사회문화 전반을 개괄할 수 있는 집약된 코드 중의 하나는  환경과 생명이다. 그러한 움직임의 시초는 무엇인가? 이성에 근간을 둔 데카르트식의 근대철학은 1900년을 전후하여 일대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더 이상 미지의 영역으로 탐구되어야할 대상이 아니라 이미 극도로 다양한 부분에서 응용되고 있는 인간의 정신 탐구는 불과 100여 년 전, 바로 그때쯤에 시작된 일이다.

 

오랜 인류의 역사를 감안한다면, 무의식에 바친 100년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수 있다. 주체의 이성에 의해 기약된 인류의 핑크빛 내일은 세계양차대전에 의해 파괴되었고, 사상과 문학, 그리고 미술 등 사회 전반의 문화 현상에서 이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미술에서는 뒤샹으로 대두되는 다다이즘이 등장하였고, 무의식을 다룬 초현실주의의 독특한 행보도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미술사조들이 각각의 목소리를 목 놓아 외쳤지만, 이들의 색깔은 더 이상 미술의 독립된 영역 안에서 개별화되는데 그치지 않고 타 장르와의 직접적인 교섭을 통해 확장되어 나간다. 한 예로, 르네상스 시대의 3차원적 재현 방식은 더 이상 보는 방식의 우월성을 선점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오늘날의 미술은 시대를 읽고자 하는 철학자나 사상가와 면밀한 소통의 창구를 열어놓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의 연속선상에서 우리는 인간 친화적으로 들리는  환경과 생명이란 키워드와 마주하게 된다. 환경과 생명은 인간과 밀착된 삶의 근원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 시발점은 오히려 반인간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푸코 등의 구조주의 계열을 따르는 들뢰즈는 인간을 욕망하는 기계의 분절된 신체로 미분화시키며 생명의 본질을 구조적으로 파헤치고자 한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생명체의 미세 단위인 DNA까지도 파악하고, 그것이 이루는 생명의 구조에 대한 물음도 던지게 되었다.

 

도대체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생명의 텃밭이 되는 환경이란 무엇인가? 사실 들뢰즈에서 비롯된 생명철학에 대한 오늘날의 관심은 우리가 인간중심주의적으로 사용하는 생명 존중과는 사뭇 다를 수 있다. 들뢰즈는 아주 미시적인 각도에서 인간을 움직이고 있는 구조를 살펴보고자 했다면, 오늘날 회자되고 있는 생명 운동은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제안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진위를 떠나, 태어나는 순간 생존과 끝없는 사투를 벌이는 유한한 생명은 어떤 이유로든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번 <환생도(環生圖)> 전시 역시, 장르 간 교섭이라든가 생명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이라는 측면에서 시대의 유행 코드에 부합할 수 있는 하나의 적극적인 시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김정현

 

 

 

Fragmentary Thoughts about Exhibition, Pictures of Reincarnation

 

   The code that can summarize the overall societies and cultures today may be ‘the environment and life.’ What is the origin of such a movement? Modern Cartesian philosophies based on reason came to face a great turning point around 1900. Explorations of the human mind that is not an object to be explored as an unknown area any longer but already applied in extremely various fields began around that time, just 100 years ago.

   If the long history of mankind is taken into consideration, the time of 100 years devoted to the unconscious may not be that long. Mankind’s pink tomorrow promised by the subject’s reason has been destroyed by two world wars and cultural phenomena of society as a whole such as thoughts, literature and art came to attempt to escape from this. In the art world, Dadaism represented by Duchamp emerged and a unique move of surrealism dealing with the unconscious could be found. Of course, in addition to them, various trends of art raised their voices; however, their colors did not stop at being individualized in the independent area of art any longer but expanded through direct negotiations with other genres. For example, the three-dimensional mode of representation during the Renaissance was not able to take the superiority of perspective any longer, and art today came to open a window for close communications with philosophers or thinkers who would like to read the times. On the continuum of this trend, we come to encounter the key word, ‘the environment and life’ that sounds human-friendly. The environment and life suggests the origin of life adhering to humans; however, it can be said that its starting point began from anti-humanism.

 

   Deleuze who follows the structuralist trend of Foucault differentiates humans into the segmented bodies of desiring machines and attempts to dig up the essence of life structurally. Thanks to the development of science, we came to understand DNA, a minute unit of life and ask questions about the structure of the life it forms.

 

What on earth is life? And what is the environment that is the foundation of it? In fact, the present interest in life philosophy started from Deleuze may be quite different from the respect for life we use in an anthropocentric way. While Deleuze tried to examine the structure that moves humans in a very microscopic perspective, it seems that the life movements that is on everyone’s lips today is suggested on a more macroscopic perspective. And yet, regardless of its truth, limited life that has fought desperately for survival since it was born has an important meaning in whatever sense.

 

 This exhibition, Pictures of Reincarnation, also, I think, can be a positive attempt to correspond to the codes of the times in vogue in terms of negotiations between genres or concrete approaches to life.

- Art Discoursist Jeong-hye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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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_ The Color of Drawing for Ecology

생태그림전

 

2012. 7. 13() – 7. 23()

Open 12-7pm / Closed on Sunday

 

기획 : 정용훈

작가 : 정용훈, 김광식, 윤영아, 정해진, 천지현, 황경택 (6)

주최 : DESIGN60

전시 : Gallery GAHOEDONG60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60번지

02-3673-0585

www.gahoedong60.com

gahoedong60@gmail.com

 

 

 

 

 

 

 

천지현_동박새_30x22cm_비단위에 전통진채_2012

 

 

 

 

천지현_소쩍새_28x41cm_종이위에 수채_2012

 

 

 

 

 

 

 

 

 

자연이 소중하며 자연의 균형이 지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소중함을 행동으로 옮겨 표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CODE 작가들은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하며 그 소중함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가치를 알리는데 뜻을 같이한다. 더구나 도시 내에서는 지나쳐버리기 쉬운 생명들과 함께 호흡하며 이 취지를 널리 알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게 하고 싶어한다. CODE의 모든 전시는 이러한 작가들의 마음이 담겨 있으며 예술로 표현하여 동감하기 쉽게 보여준다. 이 전시는 작가들과 대중들의 소통의 창구로 활용하여 다양한 예술장르와의 접목을 통해 더욱 소중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광식_버들치_21x29.7cm_종이위에 수채_2011

 

 

김광식_주름다슬기_21x29.7cm_종이위에 수채_2011

 

 

 

 

 

 

CODEThe Color of Drawing for Ecology 의 약자로 생태에 관심이 있는 작가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10년 생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이 함께 모여 전시를 기획해 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어 2010년 갤러리 가회동60에서 정용훈 작가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2011CODE 1회 정기전을 가졌고, 올해 7월 정용훈 작가의 기획으로 두 번째 정기전을 갖게 되었다. 또한 9월에는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DESIGN60 기획의 특별기획전을 가질 예정이다.

생태 그림은 그간 예술 분야에서 일러스트나 도감 그림 정도로 취급되어 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생태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은 현재 예술분야에서나 생태나 환경 분야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찾기가 다소 애매한 상황이다. 예술적으로 보나 생태적으로 보나 충분한 가치를 지닌 이들 작품의 가치를 찾는 일은 작가들로서는 다소 힘에 부치는 일로 여겨져 DESIGN60에서는 CODE모임과 전시를 주최하며 생태와 예술을 연결한 다양한 전시와 행사를 기획하여 이들을 알리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윤영아_참나리에서 수분하는 호랑나비_24x33.5cm_비단위에 전통진채_2012

 

 

 

 

 

윤영아_백선을 먹고 자라는 산호랑나비애벌레와 산호랑나비_38x48cm_종이위에 아크릴, 산호랑나비 표본_2012

 

 

 

 

 

 

 

 

 

정용훈_재두루미_72.7x50cm_캔바스에 아크릴_2012

 

 

 

 

정용훈_오색딱따구리 버드카빙_20x20x32(h)cm_나무조각, 아크릴_2012

 

 

 

 

 

 

2월까지 청계천문화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된 , 꽃 세밀화로 만나다전에서는 청계천의 생물들을 세밀화로 표현하여 전시하며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각종 행사를 진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현재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열리고 있는 옛 그림 속 우리생물전은 조선시대의 화훼, 초충, 영모도 114점을 전시하여 우리의 옛 그림에 담긴 선조들의 철학을 보여주고 있어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중시되었던 자연에 대한 사상을 엿보며 대중들의 자연에 대한 관심을 풀어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이번 CODE의 정기전과 9월에 기획되는 특별전인 CODE _ 新花鳥圖는 비록 공간은 작지만 대중과 소통하기 쉬운 북촌 지역에 있는 가회동60 갤러리에서 개최되며 전시기간 동안 많은 관람객이 생물과 예술이 접목된 지점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갈 것으로 생각된다. ■ 가회동60

 

 

 

 

 

 

 

정해진_강인하게 자라서 여름에 꽃이피는 범부채_23.5x32cm_비단에 전통진채_2012

 

 

 

정해진_블랙베리의 이름을 가지게 된 범부채의 씨앗_25x25cm_비단에 전통진채_2012

 

 

 

정해진_4_부채모양 잎을 가진 범부채_29x37cm_비단에 전통진채_2012

 

 

 

 

 

 

 

 

 

 

황경택_도심속으로 떠나는 식물여행_계간지 '사람사는 여행' 1권_2011_12월호

 

 

 

 

 

기획자 및 참여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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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회동60 GAHOEDONG 60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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