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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Review

인왕산을 거닐다 _ 박능생 _ 2014_0620 ▶0703

 

인왕산을 거닐다

 

박능생 / PARK NUNG SAENG / 朴能生 / painting

 

2014_0620 ▶2014_0703 / 휴관일 없음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휴관일 없음

 

가회동60_GAHOEDONG60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Gahoedong60@gmail.com

www.gahoedong60.com

 

 

 

 

 

  

인왕산_(좌)69x99cm_(우)61x66cm_캔버스에 아크릴_2014 

 

 

 

 

 

 

박능생, 인왕산을 거닐다.

 

솔직히 말해 이번 박능생 작가의 전시는 별다른 글이 필요치 않아 보인다. 굳이 글로 풀어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그림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추사의 제자 이상적이 세한도를 받은 뒤 중국의 유명 문인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이 격찬하며 써 준 평 글을 그림 옆에 붙여 넣었듯, 내가 시를 쓸 수 있었다면 이런 전시 소개 글 대신 그의 그림 한 귀퉁이에 멋진 필치로 떠오르는 시구를 적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재주가 없다 보니 이렇게 딱딱하고 재미없는-그의 그림에 비하자면-글로 대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렇게 말하자니 마치 그의 작업을 낭만적이라 생각하는 듯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의 작업을 보면 그 과정에는 실로 엄청난 시간이 담겨있는 것을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스케치를 위해 두 발로 산을, 도시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행위는 물론이거니와 차곡차곡 쌓인 수십만 시간의 붓질이 하나하나의 작업에 배어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전시를 위한 작가미팅이 있던 날, 그는 드로잉을 감싼 두루마리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작업들을 살짝 맛보기만 하려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드로잉들에 담긴 힘과 필치가 언뜻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수묵화로 그린 인상파 그림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조각조각 펼치는 스케치용 종이와 장지, 캔버스 천 위에 아크릴, 먹 등의 재료로 다양하게 표현된 산수의 필치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스케치를 통해 제작된 것이었다.

 

 

 

 

 

 

 

 

인왕산_화선지에 수묵, 아크릴_34x138cm_2013

 

산행_화선지에 수묵, 아크릴_34x138cm_2014

 

 

 

초록빛의 굵은 필치로 그려진 인왕산에는 한 호흡으로 그려진 드로잉에 수천 수만 번의 붓질이 숨어 있다. 이사람, 정말 작가로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작가를 진짜 작가와 가짜 작가로 구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그의 필치는 분명 하루도 쉬지 않고 붓을 담금질하는 과정을 통해야만 나오는 고난의 결과물임이 분명하다. 계산하거나 계획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원초적인 붓의 힘이 담겨 있었기에 그 간의 작업 과정이 짐작되면서 감동이 밀려온 것이다.

 

몇 번의 붓질로 완성된 인왕산 설경을 보자. 몇 개 되지 않는 그 터치들은 마치 원래부터 거기 존재하기로 되어있었던 양 캔버스 위에 사뿐히 앉아있다. 자연을 그린 스케치가 자연스럽지만 단순하다는 것은, 단순함을 넘어서는 일임에 분명하다꼬박 한 달을 인왕산을 오르내리며 완성했다는 A3 남짓한 낱장의 종이 12장에 스케치 된 서울풍경은 또 어떠한가. 그것을 바닥에 펼치자 어느새 안산에서 바라본 인왕산을 중심으로 서울의 전경이 펼쳐졌다. 20미터가 넘는 그의 대작들에서 보이던 장대함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미니어쳐 서울산수 랄까.. 정말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서울풍경도_종이에 수묵_42x29.5cmx12_2013~14

 

 

 

 

최근에 지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베이스기타 연주자이자 교육자인 앤서니 웰링턴의 의식의 4단계라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는 그가 악기를 연주하며 숙련하는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을 설명한 것으로 단순히 음악의 영역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첫 번째는 연주자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해서 조차 알 수 없는 무의식적 무지 無意識的 無知 단계, 두 번째로 자신의 부족한 연주와 그에 대한 지식을 확실히 깨닫게 되는 의식적 무지 意識的 無知 단계, 세 번째로는 자신이 연마한 스킬로 스스로를 판단하고 많은 연주를 하며 경험을 쌓게 되는 의식적 지식 意識的 知識 단계, 마지막으로 자신의 연주를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어 그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직감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즐기는 경지에 다다른 세계적 뮤지션들의 무의식적 지식 無意識的 知識 단계가 그것이다. 그는, 사실상 이 단계들 사이에는 벽이 존재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는 조언을 하고 있다. 이것을 보며 기술적 숙련이 필수적인 분야라면 음악이 아닌 다른 모든 예술 영역에 충분히 견주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왕산_34x69cm_화선지에 수묵, 토분_2013

 

부처바위_캔버스에 수묵,아크릴_60x144cm_2014

 

 

 

박능생 작가는 이전의 도시산수 작업 과정에서 그가 대상으로 삼은 곳곳-서울, 부산, 대전, 뉴욕, 난지, 북한산, 인왕산 등등-을 직접 발로 디디며 다양한 구도를 조합하여 도시산수의 통섭을 표상하는 작업을 해 왔다. 그의 작업들은 여러 방식의 합일을 통해 환경을 자연스럽게 단순화 하는 과정이 함축되어 있다. 그는 도시와 자연의 합일, 과거와 현재의 합일, 자연과 인간의 합일 등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과 환경-그가 작업의 대상으로 삼았던 주변의 모든 대상들-의 합일을 시도하며 수묵이라는 기법으로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와 공존할 수 있는 작업들로 문제를 제기해 온 것이다. 이러한 작업에서 그는 위의 네 가지 의식의 단계를 넘나들며 고민해 왔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경지의 문제라기 보다는 작가의 의도에 관련된 것이며 환경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인간의 태도에서 취할 수 있는 당연한 자세일 것이다.

 

나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그가 무의식적 지식 상태로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드로잉이라는 것이 가진 순간적 특성은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손이 먼저 그 일을 해낸다. 이러한 상태는 그의 작업 행보에서 다음 주제의 작업으로 넘어가기 위한 하나의 쉼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환경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도시의 형성을 위해 끊임없이 과거의 건축물과 자연을 파괴하는 비 정상적인 현대사회의 구조적 비판을 내놓고 있는 그의 작업 행보에서 잠깐 쉬어가도록 유희적 붓질이 그를 인도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는 작업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드로잉을 통해 생각을 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왕산을 거닐었을 것이다. 그가 늘 오르던 산에서 그는 무의식적인 붓질로 마음을 비웠을 것이다. 그리고는 새털처럼 가볍게 한 점으로, 혹은 굵고 거친 한 호흡의 붓으로 그려나갔을 것이다. 작가의 휴식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김정민

 

 

 

붉은산_종이에 홍묵_25x33cmx2_2011

 

 

 

 

 

회화적 장치 속에 가려진 친절

 

방안에서 그린 산수화 _ 시간을 영원히 늘려 버린 광경 _ 풍경 속과 사이를 오가며 벌이는 풍광 장치적 놀이 _ 또 다르게 변주된 CODE의 연속 _ 가만히 펼쳐진 회화 장치들 _ 친절함을 가장한 불친절함 _ 혹독한 편안한 마비 _ 모터를 달아버린 현악기에서의 줄 감개 _ 망막 속에 갇혀 재생된 장치인 회화적 현현성 _ 네모 속에 포함된 스펙타클 _ 설명과 해석의 차이 _ 코로 들이 마시는 예술 _ 향기의 미술 _ 먹 향으로 내뱉어진 날숨 _ 기타 등등.. 작가 박능생의 작품을 보며 느껴진 여러 매뉴얼적인 텍스트들이다.

 

베를린이란 도시는 다녀온 자들이나 살아봤던 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참으로 흥미진진한 핫스팟임이 분명하다. 물론, 미술을 하는 자들에게 들었던 얘기이고 지금 현재까지 살아온 자들에겐 듣지 못한 바다.

풍간의 소문을 듣자면 예전만큼은 못하다라는 평도 있다.

아무래도 그곳은 태생이 예술 지상주의로서 계획된 도시는 아니었을 것이다. 숱한 전쟁과 정치적 대립으로 엉켜진 설움이 예술의 자양분이 되었고, 창작의 꿈과 함께 발생된 예술문화가 창조적 머리들을 소집하여 전투적인 창의성을 생산하고 있는 곳이니 여러 유명 갤러리와 로비스트, 갤러리스트들이 결탁하여 미술시장의 활용 범위를 넓혔을 것이다. 이런 매력을 간직한 도시가 소규모 갤러리들과 상업 미술인들을 매료 시켜버리고 예술을 소도구화 시켜 버리며 어떤 경우에는 매우 싼 예술마저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진열시키는 등, 세계 미술시장 속 북새통 미술-문화도시로서도 보여지는 건 당연한 듯 하다.

그간의 독일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멀리 동북아시아 변방에 위치한 대한민국에서도 작은 도시 안에 살아온 필자의 감각으론 그러하다. 그러하기에 뭘 알겠냐만은.. 요즘 같은 온라인 시대에 시대적인 감으로나마 미세하게 그 지역의 감성을 느낄 수도 있겠다. 여기 보다는 여러모로 문화적으로 이점을 가질 장치가 많은 곳이기에 친절함과 불친절함이 공존하는 장소임을 느낀다.

 

 

 

 

      

부처바위  화선지에수묵 .아크릴31x45cm 2013                                                     산행 화선지에수묵 .아크릴52x36cm 2014

 

 

 

 

이러한 베를린에선 매일 파티다 뭐다 해서 많은 예술가들이 밤마다 문화의 꽃을 피운다는 얘기도 들었다. 마치 우리나라 홍대 앞 밤거리 풍경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보다는 좀더 아티클할 것이겠지만, 수많은 이단과 반항의 뿌리가 뭉쳐져 친절을 베풀 듯한 도시이다.

이런 도시에서 아티스트들과 어울려 흥얼거림은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일렉트로닉한 음악이 항상 끊임없이 퍼져 나오고 라운지 음악이니 테크노틱한 가락들이 불야성을 이루며 주변의 공기를 잠식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곳에서는 어울리지 않은 음악이 없고 못 어울릴 미술도 없을 것만 같다. 클럽-마테 CLUB-MATE 라는 자양강장제 칵테일 음료를 마시고 취하고, 예술 운운해가며 옆자리에 있던 유명작가를 비웃고 또는, 진정성 있게 국제적 미술경제 상황의 비방과 토론하기를 수 차례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문화의 정점을 만끽하리라. 나름대로 재미있는 삶이 연출된다.

 

흔히 방구석 뮤지션이란 말이 있다. 본인도 그러하다. 내 집 방구석에서만 악기를 가지고 빽뮤직 틀어놓고 연주하는 경우인데 나름 솔솔치 않게 재미있고 스트레스도 날려준다. 마치 빅 콘서트를 할 요량으로 레파토리까지 구성해서 악기를 울려대곤 한다. 심심치 않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원맨 밴드인 셈이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한다. 어쩔때는 내 방구석이 미국 뉴올리안즈 델타지역의 허름한 블루스 바 라고 생각하며 연주 할 때도 있고, 또는 커다란 콘서트 홀에서의 솔로 연주중인 나 자신을 그려내며 연주에 몰두하기도 한다.

한가지 다른 점은, 유명 연주인들은 곡 하나가 끝나면 옆에서 악기를 챙겨주는 이들이 있어서 항상 기타며 수건이며 음료를 챙겨주고 튜닝 안된 기타는 바로바로 튜닝된 기타들로 바꿔주거나 전체 콘서트 연출에 필요한 부분을 살신성인 도와주는데, 본인은 그런 친절한 존재가 없다는 점이다. 이때가 참으로 안타까운 지점이다. 왜 없는 걸까? ?!

당연한 것인데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할 때면 더욱 즐거워하는 내 자신이 느껴질 때가 있다. 없는 게 당연한데 혼자 환상 속을 거닐다 보면 이 불만족이 오히려 대단한 쾌감으로 다가 온다. 웃기지 아니한가? 이러한 상황 연출이?

 

 

 

 

인왕산 설경 캔버스에수묵 67x29cm 2013

 

인왕산 설경 캔버스에수묵 67x29cm 2013

 

 

 

만약 이곳이 베를린 이였다면, 베를린 구석에 쳐박혀진 건물 다락방 한 모퉁이에서 혼자서 이곳과 어울리지도 않을 블루스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내 자신이라면 어떨까? 가끔 유화물감으로 그림까지 그린다.. .. 죽인다. 도대체가 현실에선 어울리지 않을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다른 옆방에서는 테크노나 트립합이 흘러나오며 흥청망청 남녀가 부벼가며 파티를 즐기는 동안에도 나는 원맨쑈를 대단하게, 아주 장황하고 치밀하게 설정하고 혼자 논다.

아니다. 유화물감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먹을 갈아서 화선지나 캔바스에다 그려댄다. 이게 더 낫겠다. 더 멋지지 아니한가..? 테레핀 냄새보단 이게 낫겠다. 머리도 안 아프고 좋다.. 게다가 바로 옆방은 베를린 유명 갤러리의 초짜 큐레이터가 머물고 있다. 가끔 놀러와서 같이 술 마시며 음악 듣고 미술얘기로 꽃을 피운다. 장사속 운운하며 이러저러한 얘기들을 늘어 놓으며 세계 경제와 미술시장의 상호보완성을 농담 따 먹어가며 떠들어댄다. 가끔은 그가 고맙다며 기타줄도 사주고 캔바스와 종이도 갖다준다. 친절하기까지 하다.

상당히 만족할 만한 삶일 수도 있겠다. 지금의 내 나이와 상황이 아니라면 방들간의 경계도 허물어 버리고 어울리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작가 박능생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홀연한 내 얘기일 수도 있다.

몽상적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굳이 전시 소개 글 내지는 작가를 보필하는 의미에서의 글로서 대체하는 이유는, 이 작가분의 작업이 과연 리얼한 판타지이지 않겠냐는게 본인이 생각이고 글로서 정리하는 이유이다.

이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어찌 저리도 친절할 수가 있을까?’ 를 떠올리는 동시에, 무지스럽게까지 이렇게 많이 그리는 이유가 오히려 불친절을 함유한친절, 그 이외의 것에 대하여..’ 라는 보조가 필요한 어구로 만들어진 '어망치기' 는 혹시 아닐까..?

 

 

 

 

 

 

 

인왕산 드로잉시리즈 종이에수묵 42x29cm 2013

 

 

 

 

미술은 자연스레 사회적, 역사적, 전통적 환경과 지속적인 상호 작용이 필요로 하고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식적이며 감성적 표현이 수반되는 행위이다. 작금의 미술이 우리에게 현대미술에 관한 지식으로서는 이해되었을지 몰라도 자족적으로 인식될 만한 역사성과 구조적 양상으로서의 한국적 태반을 지닐 지가 아직까지도 미지수이다. 이러한 양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세계 속 메이저급 시장 속에서 성장시킬 방향성은 여태껏 철저하게 실천되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거대 담론의 중심적 헤게모니 싸움에서는 인식의 불씨가 약하고 옅다. 자칫 불씨가 꺼져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 미술가에게 친절한 표현은 과유불급이 될 수도 있으므로 회화성에 감춰진 은유적 명확성을 불친절하게나마 서사성과 함께 띄우며 표현하고 존재하는 작가가 살아 남아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미술의 역할은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기도 하지만 미술 그 자체를 거머쥔 시장경제의 모순 속에서도 싹을 틔운다. 철저하게 논리 모순적인 이야기를 품어도 될 만큼, 오히려 미술이 바라보는 사회성의 감성적 테제를 미술로서 거머쥐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자연적 발생장치인 작가들의 인식론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변화되고 변질된 인식론의 필요성이 오히려 현재 상황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작가들에게 아직까지도 필요한 불친절한 장치인 것이다.

 

허나, 반어적으로 이 장치 속에 여러 살신성인 도와줘야 할친절’이라는 매개가 존재한다.

박능생 작가의 작품 속에는 수려한 필력이 존재한다. 함부로 다가서지 못할 묘한 붓 떨림이 존재하며 작품의 유형에 따라서 드로잉의 감도가 다른 회화적 장치가 존재한다. 흔적을 남기며 지워버릴 물감이 줄줄 내려가고 그려지지 않은 부분의 여백은 순간적으로 느끼기에 왜 안 그렸을까를 남발하며 뚱하니 놓여져 있다. 방구석 뮤지션 마냥 여기저기 부분만 연주할 줄 알았지 전체를 다 건들지 못하고 있는 듯, 생뚱맞게 놓여있는 먹의 흔적들이며 회화적 장치들이다. 멋지고 매력적이다!

인왕산의 부분 부분의 풍경들이 마치 누군가의 손길을 바라고 있는 듯하다. 열심히 먹을 갈아주고 손끝에 묻은 먹을 닦아주고 다음에 그려질 종이를 준비해야 하는 어떤 이들이 필요한 듯한 인상이다. 인왕산 주변의 풍광은 풍경 속 사이를 오가며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아주 친절하게 묘사까지 되어 있다. 가만가만 펼쳐 놓아진 여러 회화적 장치가 한눈에 들어 온다. 어떤 부분은 먹 향 가득하고 어떤 부분은 혹독한 편안한 마비를 줄 만큼의 친숙한 물감덩이가 발라져 있다. 이 모든 것은 작가의 손을 타야만 나오는 것들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간절한 손길도 기다리고 있다. 아주 친절한 스텝이 존재할 것만 같은 그의 그림은 작은 네모 속에서 작가 자신의 친절함이 향기를 머금은 채로 놓여진 그림들이다. 없는 게 당연한 스텝들인데 있었을 것 만 같았던 현실의 그림들이다. 왜 없는 것일까? ?

 

 

 

 

 

 

 

인왕산 69x34cm 화선지에 수묵.아크릴.2013

 

 

 

 

미술계는 물론이고 예술가들끼리도 불친절한 대한민국 서울은 시스템 자체가 다른, 친절한 베를린과는 틀리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친절해야만 한다. 외지에서 온 손님인 자들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때가 있겠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 자신들에게도 친절해야만 하는 것이고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으면 지구력과 인식의 필요성을 갖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나, 친절이라는 구태의연한 태도를 우리에게 실천 함으로서 불친절함을 깨닫게 되면 예술의 인식적 권위를 평등화 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로 인해, 일상성과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예술의 전문성이 호소하는 - 현실적 불평등으로서의 예술론 - 을 평정하게 될런지.. 글쎄다.

 

작가 박능생의 작품들은 불평할 수 없는 그림이다. 불평하기 이전에 작가적 태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해야만 하는데 쉽지 않다. 소통을 유도한 작업이 아닌 작품들임을 먼저 인지하여야 한다. 이번 갤러리 가회동60에서 전시되는 작업들은 진화할 개체로서의 유닛unit’의 상태이다. 말 그대로 진화될 어떠한 작품의 것을 준비하기 위한 사용 지침서tutorial’와 유사한 것일 수 있다. 흔히 이러한 상태의 것들을 가리켜 드로잉이라 표현하지만 이 경우는 통하지 않는다. 동양화에서 사생화는 그 자체로 시작과 끝인 경우이므로 이런 서양적 표현은 써봐야 하등에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입-출 과정이 포함된 미술은 창작과정에서 이미 작가로서 친절한 태도가 열려있는 상태이며 현대미술로 재인식된 아카이빙archiving’이란 회화-장치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작품성으로 검증할 이유가 없고 완성된 개체로서 존재한다. 영화에서의 프리퀄 무비 prequel movie 와 유사하고, 전시 이전의 전시로서도 존재하며 자족적인 작품성을 유지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미술이 지니고 있는 친절한 태도는 영화나 음악 보다도 훨씬 이전에 현상학적인 궁금증을 풀어 줄만한 기호로서 대체되고 표상되어 왔다. 이 상태에서 작품 해석 차원의 친절함을 요구하는 회화적 장치는 이미 숨겨져 가려진 창작자의 불친절한 설명을 드러낸 경우일 뿐이다. 작가로서의 긍정적인 태도와 친절은 있을 수 있지만, 회화적 장치 속에 가려진 불친절함은 이미 친절한 상태를 가장한 해학과 위선의 연속일 뿐, 회화 자체는 항시 불친절한 예술적 매개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로써, 서양의 친절한 예술의 시대가 그려낸 당대의 미학을 몸소 느끼지도 못하고 받아들인 우리들의 할 일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그것을 훨씬 지나쳐 살아 왔었던, 지금은 불친절한 현대미술을 맛보며 살고 있는 우리의 미술은 과연 어떠한 장래를 꿈꾸며 그려질 것인지, 계속 반복되는 이 어려운 난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또 다시 몽상해본다■ 손진우

 

 

 

 

 

 

 

부처바위_ 51x47cm 화선지에 수묵_2013

 

 

 

 

 

 

 

 

박능생

 

1999 충남대학교 예술대 회화과 졸업

2002 충남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 졸업

2011 성신여대 미술학 박사과정 수료

 

개인전

2014 인왕산을 거닐다, 가회동60, 서울

2013 도시를 탐하다, 갤러리 조선, 서울

2013 Vertical Jump Ⅲ p339 갤러리, 미국 뉴욕

2013 주불 한국문화원 정기전시초대전, 주불 한국문화원

2012 도시산수, 그림손 갤러리, 서울

2012 SOOMOOK NEWYORK STORY, Kips Gallery, 미국 뉴욕

2011 Vertical Jump Ⅱ, 갤러리 비원, 서울

2010 금천 삶이야기-금천프로젝트Ⅰ, 금천예술공장 PS333, 서울

2010 Vertical Jump Ⅰ, 북경 798 pickled Art UNITONE, 중국

2009 飛· 세마지원작가전, 인사아트센타, 서울

2009 드로잉-풍경을가져오다, Ray Frederick Art Gall, USA

2008 국제 교환프로그램·귀국보고전, 국립창동스튜디오, 서울

2007 산타기, 중국교화랑, 북경

2005 낮 혹은 밤에 보이는 풍경, 공평아트센터, 서울

2004 도시와 자연, 중국 염황미술관, 북경

2003 도시와 자연, 한림갤러리, 대전

2002 도시와 자연, 갤러리 상, 서울

2001 도시와 자연, 공평아트센터, 서울

2000 금강미술대전, 대상작가 초대전,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레지던시 프로그램

07-08 국립창동스튜디오 제6기 장기입주작가,국립현대미술관

2008 국립현대미술관-VIS A VIS artlab 국제교환입주작가, 798ArtZone Beijing, VIS A VIS artlab, china

08-09 난지창작스튜디오 제3기 입주작가, 서울시립미술관

09-11 금천예술공장 제1기 장기입주작가, 서울문화재단

2011 서울문화재단-뉴욕, 에이팩스아트 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 입주작가, 미국뉴욕

2013 ARPNY 레지던스프로그램 입주작가, 미국뉴욕

 

프로젝트 프로그램

2010 금천 삶 이야기-프로젝트 공모선정, 서울문화재단후원, 서울 금천구

2011-2013 rivers of the world a thames festival project, 영국문화원 후원

2012 따스한 채움터 특별전 프로젝트, 서울 노숙자 복지센타, 서울시 서울시립미술관 후원, 서울

2012 금천예술공장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 공모선정,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 후원, 서울

 

수상 및 수혜

2013 시각예술창작활성화-기획프로젝트 지원작가선정, 서울문화재단, 서울

2012/2013 주불 한국문화원 정기전시 작가공모 선정, 주불 한국문화원

2012 시각예술창작활성화-기획프로젝트 지원작가선정, 서울문화재단, 서울

2011-2012 부산스페이스배 전시지원작가 선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1 시각예술창작활성화-기획프로젝트 지원작가선정, 서울문화재단, 서울

2010 시각예술창작활성화-기획프로젝트 지원작가선정, 서울문화재단, 서울

2010 금천예술공장 커뮤니티아트 선정, 서울문화재단.금천예술공장, 서울

2009 세마 신진작가 전시지원프로그램선정,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예술표현활동 지원작가선정 (서울문화재단, 서울)

2008 예술표현활동 지원작가 선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

2004 동아미술제 동아 미술상, 국립현대미술관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대전MBC, 경기도미술관, 영은미술관, 상명대박물관, 중국북경교화랑, 중국북경 덕승문화랑, 충남대도서관,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여롯데리조트, ()페루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