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end_polis
2009_0313 ▶ 2009_0328
초대일시 2009_0313 금요일
관람시간
가회동60 스페이스향리 GAHOEDONG60 SPACE HYANGLI
Tel. +82.2.3673.0585
www.hyangli.com
blend_polis: 판타지와 폐허가 뒤섞인 도시
오늘날 건축은 자본주의를 유지 및 촉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건설되거나 파괴되는 순환반복의 구조 속에 편입되어 있다. 이 구조 안에서는 모든 건축 공사가 2가지 범주로만 귀속된다. 도시 기획에 맞춰 새로이 지어져 판타지적 꿈을 확장시키느냐, 아니면 잊어버려야 할 과거로 철거되고 마느냐.
* 기록과 비판으로서의 건축 사진:
동대문 사진 연작에서 눈여겨 볼 점은 일제 때 지어진 이 건물의 낡은 표면이 그 뒤에 솟아오른 화려하게 빛나는 밀리오레라는 현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상업건물과 사선으로 대비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선대비는 오래전부터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건축물의 철거와 신축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이전의 작가들에게서 그 계보를 찾아볼 수 있다. 현대 미술에서 보자면, 우선 1950년대 유럽의 상황주의자들은 르 꼬르뷔제(Le Corbusier)의 기계미학을 도시의 환등상(Phantasmagoria)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그 이론적 정초를 다진 바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1970년대 미국에서는 고든 마타-클락(Gordon Matta-Clark)을 선두로 한 ‘아나키텍쳐(Anarchitecture)’그룹이 폐허로 철거되는 건축물과 화려한 신축 건물-특히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주목-을 대비한 다양한 흑백 사진을 제작, 수집하였다. 좀 더 사진사의 맥락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하자면, 1960-70년대 베허 부부(Bernd and Hilla Becher)의 유형학적 건축 사진은 비록 형식주의 미학이 강조되어 있긴 하나, 후기 산업시대에 폐기된 건물을 찍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에 대한 사회 정치적 맥락을 제고한 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1970년대 로버트 아담스(Robert Adams)나 루이스 발츠(Lewis Baltz)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뉴 토포그래픽스(New Topographics)’에서는 그 비판성이 훨씬 구체적이고, 증폭된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건설된 구조물과 자연 풍경을 대비한 후자의 사진은 얼마간의 주관성과 미적 실험이 있다고는 하나, 기존 다큐멘터리 사진의 형식적 계보에 충실한 듯 8x10사이즈의 흑백 형식은 지나치게 엄숙한 측면이 있다.
* 서정적 밤풍경과 낯설게 하기:
그러한 어스름한 빛 속에서 건물의 전면이 드러나지 않은 채, 심플한 기하학적 구도 속에 편입된 동대문 운동장은 그런데 왠지 낯설다. 친숙해야 할 우리 주변의 풍경이 낯설게 다가오는 그러한 언캐니(uncanny)함은 그의 다른 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텅 빈 공터 너머로 교회의 십자가와 함께 반짝이는 로봇처럼 서 있는 건물 사진, <blend_polis#02>(2003)는 우리가 마치 외계 세계에 온 것 같은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원래 이렇게 낯설게 하기는 그동안 많은 예술가들이 대상에 비판적 거리를 두도록 하기 위한 전략으로 자주 이용해왔다. 일례로,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의 쨍하게 깨질듯, 눈부신 조명으로 가득 찬 인적 없는 건물 사진은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화려한 빛은 너무도 유혹적이지만, 어딘가 비현실적인 기묘한 낯설음 때문에 우리는 그 공간에 무한정 빠져들 수만은 없게 된다. 이로써 자본주의의 화려한 스펙터클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하려한 그의 의도는 성공하는 셈이다.
* 도시를 배회하기: <blend_polis> 연작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복잡한 성격만큼이나 그 표현이 내밀하게 혼재되어 있다. 기록과 비판, 서정적 감수성과 동경이 은밀히 섞여 있는 것이다. 정부의 수주를 받고 도시 재개발로 철거될 건물을 기록하기 위해 집체만한 카메라를 마차에 싣고 다니던 19세기 파리 사진사처럼, 자본주의 논리로 치장된 화려한 도시 스펙터클에 균열을 가하기 위해 며칠 밤을 표류하던 상황주의자들처럼, 그리고 뉴욕의 서정적 밤풍경을 찾아 헤맨 현대 사진가 잰 스텔러(Jan Staller)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