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where in moment
양대만 전
2012. 11. 10(토) – 11. 23(금)
오픈 12-7pm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2012. 11. 14(수) 6:00pm
가회동60_GAHOEDONG60
www.gahoedong60.com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02-3673-0585
Somewhere_oil on Linen_130.3x162.2cm_2012
양대만의 ‘살아있는 현재’
“거리의 풍경이 지나간다. 한 순간이 포착된다. 이를 인지하는 그 순간을 나는 과연 현재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까?....... 나에게 감각된 한 순간은 이미 지나갔지만, 나는 계속 그 안에 머물고 있다. 풍경은 내면으로 들어와 마음속의 재료들과 합쳐진다. 그리고는 내 안에서 새로운 풍경으로 다시금 지각된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모호한 느낌...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풍경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선상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양대만의 작품에는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차와 거리의 풍경이 등장한다. 차와 거리를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그에 의하면, 이것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양대만에게는 지금 자신 앞에 놓여있는 대상이 가장 중요하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자신에게 친숙한 대상들과의 대화에 익숙하다. 이들과의 대화는 양대만 자신, 즉 ‘나’를 의식하게 해 준다.
Somewhere_oil on Linen_72.7x116.8cm_2012
Somewhere_oil on Linen_72.7x116.8cm_2012
양대만이 ‘무엇인가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대상에 대한 의식’이다. 의식은 대상의식 속에서 대상과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는 바로 현상학적 개념을 정립한 후설 (Edmund Husserl, 1859~1938)의 ‘지향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후설은 대상을 대상이게끔 하고 또 이를 통하여 감정 작용, 욕구 작용 등의 대상이 되게 하는 것을 표상작용(다시 말해 객관화 작용)이라 하였다. 만일 의식이 이런 표상작용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의식에 대해서 대상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후설은 감각된 외부 대상이 이와 유사한 표상작용과 결합하여 내적으로 의미가 만들어지는 연상 작용을 여러 가지 지향성 중 하나의 작용으로 보았다. 이를 통해 그가 탐구하고자 했던 것은 자연적 시간이 아니라 의식진행의 내재적 시간이다. 그것은 현실적 공간이 아닌 현상학적 공간이며, 그럼으로써 현재적 관점에서 ‘살아있는 현재’가 되는 것이다.
Somewhere_oil on Linen_50x191cm_2012
양대만은 실제 보고 있는 대상과 이를 의식하는 자신 사이에서 무엇이 현실이며, 또 언제가 지금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이에 대해 후설은 시간의식의 객관적 시간 배제에서 감각과 지각을 구분하고, 지각이 좀 더 근원적인 시간을 구성하는 작용임을 설명한다. 감각된 것은 지각된 것에 의해 구성되며 또한 지각된 것의 현상학적 자료이다. 지각된 것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의식 내재적 시간의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후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 자루의 분필에 주목해 보자. 그리고 눈을 감고, 또 떠보자. 이 때 우리는 두 가지 지각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일한 분필을 두 번 본다고 말한다. 이 경우 우리는 시간적으로 분리된 지각의 내용들을 갖게 된다. 그리고 현상학적으로 시간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즉 간격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대상에는 어떠한 분리도 없으며, 대상은 동일하다. 말하자면 대상 속에는 지속이, 현상 속에는 변화가 있게 되는 것이다.”
Somewhere_oil and Acrylic on Linen_97.0x162.2cm_2012
감각이 직접적으로 경험될 때 그 감각의 여운은 일정 시간 남아있게 되는데, 그 감각이 완전히 사라지더라도 여전히 그 감각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 변양되기 때문이다. 후설에 의하면 감각이 상상으로 이행되는 경우, 항상 변화되는 시간적 성격을 유지하고 내용도 각각의 순간마다 점차 뒤로 밀려 후퇴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변양은 더 이상 감각의 일이 아니며, 자극을 통해 야기되는 것도 아니다. 자극은 현재의 감각내용을 산출하게 된다. 자극이 사라져버리면 감각 또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감각은 그 자체로 창조적이 된다. 즉 감각은 내용적으로 같거나 혹은 거의 같은 내재된 상상표상과 시간적 성격에 의해 풍부하게 변모되어 새로운 상상표상을 스스로 산출한다. 그리고 이러한 표상은 또다시 부착되어 있는 새로운 표상을 일깨운다. 내부로 인지된 감각은 차나 거리 등 외부대상이 없어지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다른 감각들 혹은 그 이전에 표상된 것이 실마리가 되어 또 하나의 상상표상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변양을 통해서이며 또한 지속됨으로써 유지된다. 후설의 이론과 연관되어 생각해 보자면 양대만의 작업은 외부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에서 시작했지만 주어진 것들을 현상학적 문제로 삼아 심적 흐름에 대한 의식의 층들을 분석하며 자연적 경험을 넘어서는 토대를 찾고자 한다.
Somewhere_oil and Acrylic on Linen_24.2x33.4cm_2012
Somewhere_oil and Acrylic on Linen_24.2x33.4cm_2012
양대만은 말한다.
“나는 왜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질까? 혹시 이제까지의 경험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를 동경하거나, 찾아보거나, 혹은 도피하고자 하는 것들이 모두.”
사람들은 세상과 교류하면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알아 가면 갈수록 누구에게도 온전히 의존할 수 없고, 요구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세상 속에서 스스로 ‘내가 어떤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해야만함을 깨달아 간다. 여기서 의식이 지니는 지향성은 구체적인 경험적 자아가 체험한 총체이기도 하고, 내적 지각의 반성적 의식을 의미하기도 하며, 또한 대상에 대한 의식을 뜻하기도 한다. 후설은 다양한 감각내용이 해석되면서 자기 동일적 대상과의 의식적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파악 또는 통각이라 하였다. 지향성은 파악작용과 감각내용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파악 내지 통각에 의해 자기 통일적인 구성이 성립되는 것이다.
“하나의 완결된 흐름이 경과되면, 그 흐름을 회고할 수 있으며, 그 흐름은 그것이 나타나는 바와 같이 기억 속에서 통일성을 형성한다. 따라서 의식의 흐름도 역시 명확하게 그 의식 속에서 통일성으로서 구성된다.”
양대만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대상은 마치 차 속에서 움직이며 한 순간 감각했던 바깥 풍경을 포착한 듯 보인다. 이 순간은 현상학적 시간으로 시간객체에 의한 통일적인 통각작용 뿐 아니라 이미 지나가 버렸지만 시간의 공간을 의식 내재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객체에 대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간을 구성하는 흐름은 단지 흘러가기만 하고 변화하기만 하는 흐름이 아니라 양대만에 의해 감각되며 변양되어 다시 현재적 관점에서 지각되고 변양된 ‘지금’으로서 나타나는 대상성이다. 이는 후설의 과거 지향적 통일성의 구성으로 ‘순간적-동시에 있음’을 뛰어 넘어 항상 새로운 것을 추가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객관적 대상에 대한 시선이 생겨나며 구성된 통일성으로서 언제나 흐름 속에 있는 의식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Somewhere_oil and Acrylic on Linen_60.6x72.7cm_2012
Somewhere_oil and Acrylic on Linen_53x72.7cm_2012
이제 양대만이 처음에 궁금해 했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풍경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선상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 현상학자 헬트(K. Held)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살아있는 현재’는 ‘지금’ 시간이라고 할 수 있기 이전의 모든 시간성 자체의 근원점이요, 반성이 시작되는 근본 현상이다. 후설에 의하면 근원적인 의식 변양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순수자아에서 성립된다.”
글_ 황선영 (미술치료학 박사)
Somewhere_oil and Acrylic on Linen_91x116.8cm_2012
2012 작가 노트 ‘살아있는 현재’
과거는 허상이며 지금 이 순간만이 현실이고 모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걸 느끼는 이 한 순간은 이미 허상 속으로 흘러갔다.
때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바로 그 어떤 곳(Somewhere)에 살아있는 한 순간이 존재한다. 그래서 전혀 구체적이지 않은 그 무엇이 가장 실제적이고 사실적이기도 하다.
어느 날 늘 지나치던 풍경을 문득 하염없이 바라본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던 시간과 공간 속에도 그 무엇은 자리하고 있다.
그 무엇이 바라보던 나의 삶은 신기루처럼 흩어져간다.
쏜살같이 달리는 시간의 급류 속에 나는 서 있다. 그 시간의 어디쯤에 올라타야 할지 나는 알 수 없다.
순간, 현재, 모호함, 실상과 허상, 현실과 비현실, 없음, 있음, 時間,,,,,,,
Daeman Yang’s “Living Present”
“A street landscape passes by. A moment is captured. Can I call the moment the present? Though the temporal moment that I sensed has already passed away, I am still in the very moment. The sensed landscape comes into my mind, merges with elements in there, and then is perceived again anew within me. A nebulous feeling blurring the real and the surreal.... Where is the landscape I see in the continuum of time—the past, the present and the future?”
In Yang’s works appear familiar cars and street landscapes you can easily see anywhere around you. Common automobiles and street scenes are the subject matter for his work because they are the ones he readily encounters, according to Yang himself. To Yang, nothing is more important than the object right before him. He is accustomed to communicating with objects familiar to himself without knowing himself from when he got used to it. Such conversations with his intimate objects help him to be conscious of his “self.”
When Yang is ‘aware of something,’ it primarily refers to the ‘consciousness of an object.” Consciousness establishes a relationship with the object in the midst of being conscious of it. This consciousness-object relationship is of “intentional relationship” explained by Husserl (Edmund Husserl, 1859 ~ 1938), the founder of Phenomenology. According to Husserl, what makes an object as it is and what makes an act of feeling and desire directed toward the object is representation (or objectification). If consciousness does not perform such representation, it is like that the object is nothing—which does not exist—to the consciousness. Husserl viewed an association process through which a sensed external object combines with a similar representation process and creates a meaning intrinsically as one of intentionalities. What Husserl designed to explore was not natural time but internal time of consciousness—not realistic space but phenomenological space, the space that becomes the “living present” from the present perspective.
Between the object he actually looks at and his “self” who is conscious about it, Yang is doubtful over what is real and when is “now.” On such phenomenological and ontological question, Husserl claimed that sensation and perception should be distinguished by means of the exclusion of objective time in terms of time-consciousness; and that perception is more fundamental in composing time. What is sensed is composed of what is perceived. And it is also phenomenological resources for what is perceived. What is perceived can last because continuity of perception is one of the properties of internal time. Let’s look at Husserl’s account:
“If we look at a piece of chalk and close and open our eyes, we have two perceptions. In this situation, we say that we have seen the same chalk twice. We have two temporally separated contents. We also see, phenomenologically, a temporal apartness, a separation. But there is no separation in terms of the object; it is the same. The object endures; the phenomenon changes.”
When sensation is directly experienced, its impression lingers for a while. Even after it completely vanishes away, the sensation is still perceived because it is the modification of the very sensation. According to Husserl, when sensation is obtained through imagination, it maintains properties of temporal variability, and its content is presented as what is pushed backward and receded per moment. But such act of modification is no longer in the realm of the sensation nor is triggered by stimulus. A stimulus only produces the sensory content of the present.
When the stimulus disappears, its sensation also vanishes away. But the perceived sensation itself becomes creative; that is, the sensation is amply modified by temporal features and internal imaginative representation which is same with or almost similar to the content of the sensation, and it finally generates a new imaginative representation by itself. The newly formed representation, in turn, awakens another representation correlated to its predecessor. Even when the external objects like cars and streets fade away, the internally perceived sensation does not disappear; instead, it is related to other sensations or prior representations and then reveals another imaginative representation. All of these work through modification and keep on through continuation. Under the context of Husserl’s theory, Yang’s work initiated by his direct experiences of external objects sees the given objects as phenomenological substances, analyzes layers of consciousness on mental flow and explores the origin beyond natural experiences.
Yang talks to himself:
“What makes me have interest in such objects? Is it related to what I have experienced so far—everything that I have longed for, searched for or even strived to escape from?
While you are interacting with the world, you come to realize that the more you know of your “self,” the less you depend on anyone else, and the less you claim. What you realize is you are self-conscious about the fact that “I am in a certain state.” Here, the intentionality that the consciousness holds refers to the whole that a concrete empirical self experiences, or the reflective consciousness of internal perception, or the consciousness toward an object. The process where various sensory contents are interpreted and form conscious relationship with self-identical objects was called prehension or apperception by Husserl. Intentionality lies in the foundation of an act of perception and sensation contents and becomes self-unifying constitutively through prehension or apperception.
“As one complete stream of consciousness elapses, it can be recollected and forms a unity in the way it is presented in the memory. Therefore, a stream of consciousness is also definitely organized with unity in its own consciousness.”
The subject in Yang’s works appears as if it drives the car or captures a patch of exterior landscape sensed at a moment. The moment is surely of a phenomenological time and thus can be understood not only as an act of unified apperception by time-object but also as a representation of the object that has already passed by but still occupies a temporal space in an intrinsically conscious way. Thus, a temporal stream consisting of time is not a stream that just flows away and continues to change, but an objectivity represented as “now” after the objectivity is sensed by Yang, modified and then perceived and re-modified from the present perspective. This indicates the unity directed toward the past and transcends “temporal-omnipresence” and continues to pursue something new. In this process, a sight towards an objective object is created and consciousness that always dwells in a continuous stream is formed in unity.
Now, let’s go back to Yang’s question.
“Where is the landscape I see in the continuum of time—the past, the present and the future?”
The remark of phenomenologist K. Held would be appropriate to answer his question.
“’The Living Present’ is the origin of the entire temporality (Zeitlichkeit) prior to the time that can be called “now” as well as the essential phenomenon where self-reflection starts. In this context, as Husserl put, it is not that primal modification of consciousness takes place in the midst of time, but that time is established in the midst of pure-self.”
By Seonyoung Hwang/ Ph.D in Art Therapy
Artist’s Note in 2012—“Living Present” by Daeman Yang
The past might be an illusion. Only this moment could be a genuine reality and what it is all about.
But the very moment I realize has already faded away into the illusion.
Often, there exists a living instant—somewhere no one pays attention to.
Something that is least concrete and noticeable is sometimes most existential and realistic.
One day, I gazed away a landscape that have been unnoticed.
Even in the temporal and spatial existence I fail to perceive, there always exists some “thing.”
The ephemeral moment of my life that a “thing” or “being” observes and stares at vanishes away like a mirage.
I am standing in the middle of the time torrent flying like an arrow.
I don’t know where is the right place I am supposed to be standing in.
The moment, the present, vagueness, truth and illusion,
the real and surreal, existence and non-existence, time………
양대만
학력
1993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현재 선화예술고등학교 미술강의
전시경력
2012 Somewhere in moment (가회동60, 서울)
2012 서울 모던 아트쇼 (aT 센터)
2012 WOW전 (삼정 갤러리)
2011 WOW전 (이앙 갤러리)
2010 열린공감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10 KASF_Korea Art Summer Festival (SETEC)
1999 의식의 확산 (서울 시립 미술관)
1997 제3회 오감도전 (서남 갤러리)
1997 re-figure전 (덕원 갤러리)
1996 제2회 오감도전 (관훈 갤러리)
1995 제1회 오감도전 (갤러리 보다)
1994 의식의 확산 (예술의 전당)
Daeman Yang
Education
1993 Fine Art, Hongik University, Korea
Present; Lecturer at Sunhwa Arts High School
Exhibition
2012 Somewhere in moment (Gallery GAHOEDONG60)
2012 Seoul Modern Art Show (aT Center)
2012 WOW Vol.2 (Gallery Samjung)
2011 WOW Vol.1 (Gallery Iang)
2010 Yellin-gonggam (Hangaram Art Museum of Seoul Arts Center)
2010 KASF(Korea Art Summer Festival) (SETEC)
1999 Spreading of Consciousness (Seoul Museum of Art)
1997 Ogamdo Vol. 3(Painting of the Five Senses Vol. 3) (Seonam Gallery)
1997 re-figure (Dukwon Gallery)
1996 Ogamdo Vol. 2(Painting of the Five Senses Vol. 2) (Kwanhoon Gallery)
1995 Ogamdo Vol. 1(Painting of the Five Senses Vol. 1) (Gallery Boda)
1994 Spreading of Consciousness (Hangaram Art Museum of Seoul Arts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