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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경_blend-polis#05_pigment print_80X172cm_2007





blend_polis

김영경 / KIMYEONGKYEONG / 金暎卿 / Photography

2009_0313 2009_0328

초대일시 2009_0313 금요일 오후6

관람시간 11:00am ~ 7:00pm / 월요일 휴관

 

가회동60 스페이스향리 GAHOEDONG60 SPACE HYANGLI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www.hyangli.com

 

 

 

blend_polis: 판타지와 폐허가 뒤섞인 도시

 

장다은 (미술 비평)

 

오늘날 건축은 자본주의를 유지 및 촉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건설되거나 파괴되는 순환반복의 구조 속에 편입되어 있다. 이 구조 안에서는 모든 건축 공사가 2가지 범주로만 귀속된다. 도시 기획에 맞춰 새로이 지어져 판타지적 꿈을 확장시키느냐, 아니면 잊어버려야 할 과거로 철거되고 마느냐. 김영경의 사진에서는 이 두 가지가 혼재한다.

 

* 기록과 비판으로서의 건축 사진: 김영경 2003년부터 제작한 <blend_polis>연작은 줄곧 서울의 도시 풍경, 특히 곧 철거될() 근대 건축물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게 될 주 대상은 동대문 운동장과 서울시청사이다. 특히 동대문 운동장 작업은 최근 철거되기까지 몇 년간 수차례의 용도변경이 있었는데 김영경은 몇 년에 걸쳐 그 내용을 작업 과정에 담고 있다.

동대문 사진 연작에서 눈여겨 볼 점은 일제 때 지어진 이 건물의 낡은 표면이 그 뒤에 솟아오른 화려하게 빛나는 밀리오레라는 현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상업건물과 사선으로 대비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선대비는 오래전부터 김영경이 지속해온 조형적 장치이다. 그러나 초창기 사진이 교외에 버려진 건축 자재나 폐허의 풍경을 근경에 두고, 그 너머 아스라한 불빛과 대조시키면서 어딘지를 알 수 없는 추상적 공간을 표현했다면, <blend_polis>시리즈에서는 서울의 구체적인 랜드 마크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작업이 이전보다 현시대의 사회 문화적인 맥락에 좀 더 밀접히 다가섬을 암시한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건축물의 철거와 신축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이전의 작가들에게서 그 계보를 찾아볼 수 있다. 현대 미술에서 보자면, 우선 1950년대 유럽의 상황주의자들은 르 꼬르뷔제(Le Corbusier)의 기계미학을 도시의 환등상(Phantasmagoria)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그 이론적 정초를 다진 바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1970년대 미국에서는 고든 마타-클락(Gordon Matta-Clark)을 선두로 한 ‘아나키텍쳐(Anarchitecture)’그룹이 폐허로 철거되는 건축물과 화려한 신축 건물-특히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주목-을 대비한 다양한 흑백 사진을 제작, 수집하였다. 좀 더 사진사의 맥락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하자면, 1960-70년대 베허 부부(Bernd and Hilla Becher)의 유형학적 건축 사진은 비록 형식주의 미학이 강조되어 있긴 하나, 후기 산업시대에 폐기된 건물을 찍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에 대한 사회 정치적 맥락을 제고한 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1970년대 로버트 아담스(Robert Adams)나 루이스 발츠(Lewis Baltz)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뉴 토포그래픽스(New Topographics)’에서는 그 비판성이 훨씬 구체적이고, 증폭된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건설된 구조물과 자연 풍경을 대비한 후자의 사진은 얼마간의 주관성과 미적 실험이 있다고는 하나, 기존 다큐멘터리 사진의 형식적 계보에 충실한 듯 8x10사이즈의 흑백 형식은 지나치게 엄숙한 측면이 있다.

* 서정적 밤풍경과 낯설게 하기: 김영경의 말대로 비판을 위해 꼭 스트레이트 포토나 딱딱한 흑백의 다큐사진을 고집해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의 사진은 도시 건축에 대해 비판적 논지를 견지하면서도 초창기 작업부터 지속해왔던 서정성을 잃지 않고 있다. 특히 커다란 화면을 장식하는 화려한 색채로 두드러지는 그 서정성은 밤풍경을 촬영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그는 한낮의 햇볕을 이용하거나 있는 그대로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도시의 기억과 호흡을 켜켜이 간직한 콘크리트 벽과 철 구조물을 아스라한 인공조명 아래 숨기듯 드러낸다.

그러한 어스름한 빛 속에서 건물의 전면이 드러나지 않은 채, 심플한 기하학적 구도 속에 편입된 동대문 운동장은 그런데 왠지 낯설다. 친숙해야 할 우리 주변의 풍경이 낯설게 다가오는 그러한 언캐니(uncanny)함은 그의 다른 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텅 빈 공터 너머로 교회의 십자가와 함께 반짝이는 로봇처럼 서 있는 건물 사진, <blend_polis#02>(2003)는 우리가 마치 외계 세계에 온 것 같은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원래 이렇게 낯설게 하기는 그동안 많은 예술가들이 대상에 비판적 거리를 두도록 하기 위한 전략으로 자주 이용해왔다. 일례로,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의 쨍하게 깨질듯, 눈부신 조명으로 가득 찬 인적 없는 건물 사진은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화려한 빛은 너무도 유혹적이지만, 어딘가 비현실적인 기묘한 낯설음 때문에 우리는 그 공간에 무한정 빠져들 수만은 없게 된다. 이로써 자본주의의 화려한 스펙터클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하려한 그의 의도는 성공하는 셈이다.

영경의 서울시청사를 담은 <blend_polis#05>(2007) 역시 기묘한 낯섦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이 사진은 한국의 근대를 그대로 간직한 건물이라는 역사적 서사를 기반에 두고, 도시의 역사적 기억과 자본주의의 판타지적 욕망이 혼재하고 있는 양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새로운 도시 개발을 위해 이제 곧 일부 철거와 리모델링을 앞둔 이 건물은 주변의 현대 건축에 뒤지지 않으려는 듯, 도시 미관이라는 미명하에 화려한 조명으로 오래된 몸을 감추고 있는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 도시를 배회하기: <blend_polis> 연작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복잡한 성격만큼이나 그 표현이 내밀하게 혼재되어 있다. 기록과 비판, 서정적 감수성과 동경이 은밀히 섞여 있는 것이다. 정부의 수주를 받고 도시 재개발로 철거될 건물을 기록하기 위해 집체만한 카메라를 마차에 싣고 다니던 19세기 파리 사진사처럼, 자본주의 논리로 치장된 화려한 도시 스펙터클에 균열을 가하기 위해 며칠 밤을 표류하던 상황주의자들처럼, 그리고 뉴욕의 서정적 밤풍경을 찾아 헤맨 현대 사진가 잰 스텔러(Jan Staller)처럼, 김영경은 요즘도 늦은 밤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건물들을 찍는다. 그것이 기록을 위한 것이든 비판의 날을 세우기 위한 것이든 혹은 은연히 드러나는 개인의 서정적 향수를 충족하려는 것이든, 결국 김영경의 사진은 blend_polis로써의 서울, 그 자체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김영경_blend-polis#03_pigment print_80X172cm_2007

 

     김영경_blend-polis#04_pigment print_80X172cm_2007

 

     김영경_blend-polis#02_pigment print_80X172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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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 마사오 판화展

 

오바 마사오/Ohba Masao/大場正男

2009_0114 ▶ 2009_0207

 

초대일시_2009_011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_11:00am ~ 07:00 / 월요일 휴관

 

가회동60_갤러리 샨티
GAHOEDONG60_Gallery SHANTI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오바마사오_Ohba Masao_goodnight_혼합재료_15x20cm


 

大場正男 오바 마사오(Ohba Masao) 1928년에 일본에서 태어나 40년 이상 판화가로서의 길을 걸어오며 국제적 아티스트로서의 입지를 굳힌 분이다.

그의 판화는 밝고 경쾌한 색감과 더불어 유니크 한 구성들로 가득 차 있으며 작가의 독특한 판화기법들이 가능한 인쇄 기술은 大場正男 자신이 직접 개발한 특수한 등사판을 사용하였기에 가능하였고 이것은 당시, 일본의 인쇄산업에서 현대의 기술과 전통적인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이미지 표현 기법의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사물을 결합시키는 방법들 가운데서 새들과 동물, 인간과 자연의 개체적 분리를 그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승화시켜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들로 표상하고 있으며 일본인의 전통적 미감에 따른 색채의 구성을 오소독스한 형태들과 결합하여 한 차원 높은 이미지들로 표현시키고 있다. 마치, 잘 다듬어지고 정갈한 일본식 정원의 이미지처럼 종이 위에 작은 평면화를 이루고 있으며 이야기의 구조가 확실한 그만의 세계관과 심미감이 장인적 기술과 함께 조화롭게 혼성되어 새로운 시지각의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날카롭고 가느다란 선들의 고착들은 가지각색의 이미지와 풍성한 기법들이 함께 어우러져 화면을 굴곡시키는 듯 보이는데, 이러한 화면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은 옵티컬(optical)한 요소는 작은 평면이지만 입체감 마저 느껴지고 있다. 이는 상당량의 작품을 완성시킨 다작의 결과로 보여질 수 밖에 없는 높은 완성도의 힘일 것이다.

또한, 작가는 가볍게는 자연에서 많은 부분의 영감을 받으면서 동시에 다른 면으로는 무거운 신비주의(mysticism)에 의지하고 있어 작품들은 자주 철학의 어구(epithet)들 또는 일본의 경구(aphorism)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곧, 작가 자신만의 어떤 특별한 어휘록을 생성하여 작품에 풍부한 뉘앙스를 안겨주고 있다. 이와 같은 예술 형식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동양의 신비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을 알리기에 충분하였고 작은 걸작들은 많은 컬렉터들의 일등 수집품이 되었다.

大場正男 은 NIKKI Art 협회(Fukuoka State Art Association)의 명예회원이며,스웨덴에서는 SKANSKA Art Academy의 객원교수로서 초대되기도 했다. 그는 아시아, 유럽, 호주, 뉴질랜드,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의 박물관에서 국제적인 명성과 함께 전람회를 열기도 했다. 또한, Malbork1998년 폴란드)에서는 Contemporary Ex Libris의 제17회 국제 Biennale에서 1위 입상을 포함하여 다수의 상을 받았다 ■ znoo

 

                           오바마사오_Ohba Masao_sunrise_혼합재료_10x14cm

                        오바마사오_Ohba Masao_うつくしいサカナヰ_혼합재료_10x10cm

                                           오바마사오_Ohba Masao_やすらぎ_혼합재료_15x15cm


                                             오바마사오_Ohba Masao_やすらぎ_혼합재료_15x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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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수展 / HAMMYUNGSU / 咸明洙 / painting

2008_1129 ▶ 2008_1218 / 월요일 휴관

 
함명수_Book_캔버스에 유채_89.4×130.3cm_2006~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80619g | 함명수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211_목요일_05:00pm

스페이스향리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1:00am~7:00pm / 월요일 휴관





가회동60 스페이스 향리
GAHOEDONG60 space HYANGLI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www.hyangli.com






 
회화의 방법적인 문제가 캔버스 밖으로 확장되고, 붓을 떠난 회화들이 등장하는 현대 미술계에서 함명수의 회화는 독자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현대 회화가 캔버스를 하나의 경계 혹은 ‘진부’한 것, ‘억압’의 틀로 간주하고, 예를 들어 사진이 가진 극 사실적 효과를 끌어들이는 등 타 장르와의 교류를 통해 끊임없이 캔버스라는 틀 밖으로 나가기 위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에 작가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방법론적인 관점에서 함명수의 회화는 오히려 붓의 터치와 색상의 탐구에 ‘집착’하는, 회화의 근본에 충실한 경향을 보인다. 형식적인 면에 있어 붓의 터치를 이용하여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가는 ‘인상파적’ 접근 방식과 유사한 면모를 보이나, 드러나는 기표적 특성만으로 작품을 판단한다면 작가의 의도를 오해할 수도 있다.


 

함명수_Bomb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08



함명수_Pistol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08

작가는 창조자로서 작가 자신과 대상으로 간주되는 창조물로서의 회화에 객관적인 거리를 두는 듯 하다. 작가는 그린다는 행위에 있어 소재에 집착하여 소재의 물성, 주관성에 초점을 두기 보다 소재를 시각화 하는 방법론에 더욱더 관심을 기울인다. 함명수에게 그림의 소재는 그야말로 하나의 대상이며 작가가 회화의 본질적 요소를 탐구하는 데에 필요한 하나의 물질인 것이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세상과 호흡하며 어떤 대상을 충분히 기록, 재현할 수 있으리라 믿지만 작업을 실행할수록 그림의 존재, 회화의 현실을 직시하고 자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이 사물을 그리기보다는 터치들을 그리게 된 이유이다. 회화에 있어서 터치와 색채는 그림의 존재이며 본질적인 요소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함명수_Skeleton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8


세필로 캔버스를 매워가며 이루어지는 작가가 회화의 본질로 간주하는 터치와 색채에 대한 끈질기고 집요한 연구는 자화상, 초 등 전통적인 소재로부터 건축물, 채석장, 민들레, 달, 해골, 자동차, 권총 등에 이르기까지 현대적 소재를 넘나든다. 그림에 형상화되는 카테고리화 될 수 없는 폭넓은 오브제 선택에 대한 해석은 유동적인 관점에서 관람자의 자유의지에 맡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회화의 표면에서 드러나는 뜨개실의 보푸라기 같은 마띠에르는 고요하고 엄숙한 슬로우 무브먼트의 흔적이며 붓 터치들은 고스란히 시간의 흔적이 된다. 작가는 회화의 진행을 이야기 할 때 ‘그린다’라는 단어 대신 ‘올린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것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여러 번을 겹쳐 그리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로 마치 여러 장의 레이어를 한 겹 한 겹 포개어 올리는 듯한 과정을 의미한다. 마치 실험실에서 여러 표본을 탐구하듯 작가는 서로 다른 소재가 담긴 여러 개의 캔버스를 열거하고, 이 작품들의 병렬적 진행을 군무적 형태로 서서히 완성시킨다. 이 과정에서 함명수는 ‘대상의 의미보다는 그림 그 자체의 변주와 증식(작가 노트 중)’에 흥미를 느끼며, 반복적인 듯 보이나 결코 기계적 균일한 반복이 아닌 이 붓 터치들은 평면의 캔버스에 입체감, 공간감을 부여하면서 회화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심층적 연구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 김윤경


 
함명수_Volkswagen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08


In the art world where the methodology of painting is expanding beyond the canvas and the brush, the paintings by Ham Myungsu stand out because of their certain unique characteristics. Ham seems to pay no attention to the fact that contemporary painting has decided to regard the canvas as a boundary, something ‘trite’ or a ‘framework of oppression’ and thus constantly making attempts to escape it by interacting with other genres such as importing the hyperrealistic elements of photography. From a methodological standpoint Ham’s paintings are very true to the roots of painting, almost obsessively studying the textures and colors of brush strokes. In terms of technique, Ham’s approach may seem similar to that of the impressionists for the fact that he uses the brush strokes to maximize visual impact, but only taking the signified to perceive his works would be to misinterpret his intentions. ● Ham seems to place an objective distance between himself as a creator and his paintings as his creations. In the act of painting, he is more interested in the process of visualizing the subject rather than to focus on its property or subjectivity, to the point of obsession. To Ham Myungsu, the subject of his paintings are nothing more than just subjects, a matter serving only for him to study the fundamental aspects of painting. On his note, Ham writes, “Breathing with the world, I believe that I can document and reproduce something well enough, but as I go along I realize and I face the reality of painting and its existence. This is why I came to paint not things but strokes. I think that in painting, the strokes and the color is its existence and its essence.” ● The assiduous, tenacious studies of what Ham considers as the essence of painting-strokes and colors-with which he fills the canvas, in thin strokes, its subjects running the gamut from traditional, such as self-portraits and candles, to modern, such as architecture, quarries, chrysanthemums, the moon, skulls, cars, and guns. The interpretation of wide, uncategorizable selection of objects depicted in Ham’s paintings can be placed in the viewer’s hands to be seen from a flexible viewpoint. However, the fuzzy ‘matiere’ on the surface of the painting, resembling that of a knitting yarn, is a trace of silent and solemn ‘slow movement’ and the brush strokes become the remains of time, wholly intact. ● When referring to the progress of his work Ham uses the expression ‘stacking’ more often than ‘painting’. This exemplifies the process of painting over and over on the same surface, as if stacking layers and layers of paint on the canvas. Just as though he were in a laboratory mulling over different specimens, he lists the numerous canvasses depicting different subjects, progressing laterally, perfecting them in a formation. Along the way, Ham is drawn to “variation and proliferation of painting itself rather than the meaning of what is drawn(according to his note)”; seemingly repetitive but anything but mechanical brush strokes allow the flat surface of the canvas three-dimensional and spatial facets, thereby reverberating in full Ham’s profound research of the intrinsic nature of painting. ■ KIMYUNK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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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E APPLE

권정준展 / KWONJUNGJUN / 權正峻 / photography.installation

2008_1107 ▶ 2008_1128 / 월요일 휴관


권정준_Fractal Apple_디지털 프린트, 아크릴박스_48×48cm_200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011027 | 권정준 사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1107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가회동60 갤러리 샨티_Gallery SHANTI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www.galleryshanti.com






space overturning-fine apple ● 육면체를 보자. 육면체는 12개의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 육면체의 모서리는 외부에서 볼 때. 두 면이 만나 돌출된 형태를 가지며, 내부에서 볼 때는 밖으로 튀어 나가는 모습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사진으로 기록해 보자. 튀어나온 모서리나 들어간 모서리든 둘 다 평면이다. 아무리 날카로운 못이나 칼날도 평면이다. 우리가 잘 찍은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서 화면상의 못이나 칼날이 날카롭게 보이는 이유는 경험에 의한 추론의 결과물 일 것이다. 이런 말들은 누구나가 다 아는 것들이다. 그래서 진부한 것 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복잡한 물체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이 대단한 어려운 것이겠지만, 아무리 복잡한 입체라도 평면이 돼버리는 것도 대단히 신기한 일이다. 뭘 찍어봐라. 입체가 되나. 둥근 것도 평면. 네모난 것도 평면. 튀어 나오거나 들어간 것도 평면이다. 처음으로 찍어 본 것이 축구공이었다. 간단하다. 축구공을 여섯 각도에서 찍은 후 인화해서 찍은 각도대로 붙인 것이다. 네모난 축구공이 만들어졌다. 나는 사진의 평면성과 사실에 대한 재현력(representation)을 믿는다.


 
권정준_Fine Apple01_디지털 프린트, 아크릴박스_120×60×60cm×4,가변설치_2007


권정준_Fine Apple_디지털 프린트, 아크릴박스_120×60×60cm×4,가변설치_2007


권정준_Fine Apple2_디지털 프린트, 아크릴박스_120×60×60cm×4,가변설치_2007


하지만, 처음 물체를 육면체로 만들었을 때. 사실 사과나 축구공, 지구본, 얼굴들 따위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정말로 만들고 싶었던 것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을 바꾸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공간을 사진을 이용하여 바꾸어내려면, 돈이 장난 아니게 들어간다. 나의 계산으로는 실제 공간의 80% 가까운 크기의 프린트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가(假)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난 그다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편이라 그건 일단 접어둔 계획이 되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작비가 들어가는 작은 물체들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하나가 ‘사과’라는 물체인데. 특별히 사과에 의미를 두거나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네모난 사과가 시각적으로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꼭 사람의 활동공간을 space overturning-해 볼 것이다. 그게 어떤 결과로 나올 지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벽의 평평한 부분이 모서리가 되고 모서리 부분이 평면이 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예측이 있기 때문이다.



권정준_사과1/4_디지털 프린트, 아크릴박스_8×4×4cm_2004


권정준_절단사과_디지털 프린트, 아크릴박스_12×12×12cm×11_2008

 
권정준_펼친사과02_디지털 프린트, 포맥스_60×90cm_2008


그림이나 사진이나 둘 다 평면이다. 그런데 내가 사진을 이용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사진으로 찍는 것이 내가 그리는 것보다 훨씬 진짜 같아서 이다. 누구는 사진보다 진짜 같은 그림~ 운운하지만 난 한 번도 사진보다 진짜 같은 그림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회화를 전공 했음에도 사진을 찍는다. 내가 믿는 재현력은 바로 이 부분이다. 아! 하나 더 있다. 그림은 구부러진 벽이나 꺾인 벽에도 그릴 수 있지만, 사진은 구부러진 인화지에 인화를 못한다. 하려면 억지로 할 순 있겠지만 초점이 안 맞는 다는 문제가 생긴다. 일반적으론 평면인 사진을 구부리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구부러진 사진은 실재에 대한 왜곡이다. ■ 권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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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nike free run 2013.07.10 11:55

    희미한 달빛이 샘물 위에 떠있으면,나는 너를 생각한다.

불가능한 歸鄕_nostomania

책임기획_최금수

2008_1017 2008_1104 / 월요일 휴관


이인철_신혼의 이씨_종이에 목판채색_61×48cm_1992

본 전시는 (가칭)김종휘미술문화재단 준비모임의 의뢰로 故김종휘 화백의 작품 『향리』연작으로부터 주제를 끌어내어 꾸린 두 번째 전시입니다. 첫 번째 전시는 『鄕里-Reminiscence』展(책임기획_오광수) 2008년 6월 20부터 719일까지 진행된 바 있습니다. 출품에 응락해 주신 작가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스페이스 향리


 

초대일시_2008_1017_금요일_06:00pm

김종휘_강홍구_김건희_김주호_노석미_박홍순_선무_여승열
오순환_이김천_이인철_임춘희_정찬일_최호철
전시진행_김정민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향리_Space HYANGLI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www.hyangli.com



적응 ● "셋만 낳아 잘 기르자"는 관공서 표어가 곳곳에 붙여지던 시기에 태어났고 채 말도 배우기 전에 이촌향도 해버린 나로서 고향을 생각한다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다. 하기사 유년기에 전쟁을 경험하고 그나마 잘 살아보기 위해 한 평생 자신을 희생하며 자식들 뒷바라지에 온힘을 쏟으셨던 우리네 부모님들의 고향도 그리 아름다울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식민지 시절과 민족분단의 끔찍함을 몸소 겪으신 조부모님 세대에게는 아마도 고향이란 기억하기조차 싫은 치욕의 공간일 수도 있다. ●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삶을 영위하면서 꼭 국가 및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만 살아왔던 것이 아니기에 때때로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고향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우스개지만 그 혹독한 빙하기에도 인류는 종족을 보존한 것을 보면 인위적이건 자연적이건 때로는 초자연적인 환경이건 간에 인간의 적응능력은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김주호_싸랑해요_채유 후 초벌 질구이_62×23×19cm_2007



최호철_와우산_종이에 혼합재료_59×84cm_1994



오순환_일출_종이에 아크릴채색_17×21cm_1999



가족아마도 내게 고향이 있다면 그것은 출생지가 아닌 성장지일 것이다. 그것도 이제 막 아스팔트 도로가 깔리기 시작하는 서울 외곽의 버스종점 부근으로 기억된다. 행정구역이 수시로 바뀌며 주택 사이사이의 자투리땅에서는 각종 경작이 이뤄졌고 쇳내음 나는 펌프물과 석유곤로가 일상을 지켜주던 시기였다. 그 동네는 가난했지만 각 집마다 너른 마당과 작은 연못 그리고 마을 어귀와 길가에는 산보다도 더 높게 느껴졌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있었다. 골목마다 강아지들과 아이들의 다툼이 있었고 귀퉁이에는 연탄가게와 쌀가게 국수가게 등이 위치해 있었다. 미천하지만 이것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고향 이미지의 대부분이다. ● 더불어 성장기 고향 구성원들에 대한 기억은 잦은 이사와 몇 번의 전학 그리고 졸업 후 재개발 등으로 이미 잊혀진지 오래되었다. 다만 아직 유효한 것은 이런 경험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오고 있는 가족이라는 존재이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진정한 의미의 고향은 지리적 장소가 아닌 가족이라는 피선택된 혈연조직으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배우자를 만나면서 선택된 가족들이 불어난다. 그렇게 저렇게 얽히면서 가족이라는 조직은 힘을 키워 가는 것 같다. 그래서 고향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이 가족들의 얼굴이다.



박홍순_Paradise in Seoul #052-S Korea_디지털 프린트_35×70cm_2007



정찬일_묵念_단채널 영상_00:06:02_2006



강홍구_fugitive1_디지털 프린트_40×60cm_1996


 

 

핑계근원의 힘을 생각해 본다. 지금과 미래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유효한 과거에 대해서 말이다. 스필버그의 공상과학 영화 『A.I.』의 데이빗처럼 어느 순간 버림받아 평생 한번도 좋았던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삶의 원천이 되었던 '인간이 되고 싶은 기계의 마음'이 있었다. 인간은 각기 삶의 태도가 다르기에 마음의 고향을 섣불리 건드리기에는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더구나 가족으로부터 나오는 힘에 대해서는 이주노동자들의 다문화 가족도 있고 결손가족, 동성애 가족도 늘고 있는 상황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감이 없지 않다. 물론 좋은 기억들만 읽어내자면 앞으로도 인류에게 가족은 계속 막강한 힘으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삶은 꼭 좋은 일들로만 구성되진 않는다. 그래서 아픔과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 그러나 바쁜 일상을 탓하며 그 고향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낯설은 타향에서 문득 남루한 고향을 마주칠 때. 반가움보다는 피하고 싶은 맘이 앞선다. 고향은 옴짝달싹 못하는 불변의 낡은 것이고 타향은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새로움이라는 얇삭한 셈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지만 또다시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을 멀리해 본다.




임춘희_우울한 들판_종이에 수채_18.3×27cm_2006



노석미_피곤하기도하고 상처받기도 싫다_종이에 아크릴채색_25×19cm_2005



이김천_날다_장지에 혼합재료_35×43cm_2008

 

허락된 고향맹목적으로 경제성장에만 몰두했던 우리에게 대가족의 해체는 그 구성원의 축소로 구성원끼리의 유대관계는 강화되었는지는 몰라도 대외적인 가족의 힘은 약화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국가 권력으로 힘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어쩌면 우리는 그나마 국가가 허락한 고향을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앞으로 고향은 출신국가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 자본화되면서 더욱 막강해진 권력의 욕심은 지역이 스스로 행복하게 살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지역에 위치한 고향마을은 의사 중앙이기를 강요받고 이미 회색 아파트촌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이제 고향마을에는 아담한 뒷동산보다 높은 아파트가, 졸졸 흐르던 개천보다는 복개천 주차장이, 물레방아간 위치에는 러브호텔이 들어섰다. ● 아무리 남겨진 고향이 그렇다 치더라도 고향 하늘을 뒤로하고 떠나온 이들의 몸과 마음은 아직도 명절마다 고향으로 향한다. 아마도 이는 고향의 발전상을 목격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두고 온 가족과의 만남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잠시나마 옹기종기 모일 한 장소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둥지가 삶의 목적이 되어 과거와 미래에 대한 보상과 위로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아직도 술주정으로 무기력해진 고향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여승열_여관방1/2_판넬에 혼합재료_72×51cm×2_1995



김건희_Spectrum of Conflict-더빨리,더많이,더좋게

_캔버스에 혼합재료_117×91cm/55×95cm_2008_부분



선무_세상에 부럼 없어라_캔버스에 유채_116.8×91.0cm_2007



nostomania
김종휘 화백의 작품제목 「鄕里」로부터 『불가능한 歸鄕_nostomania』展은 기획되었다. 노스토마니아(nostomania)는 단순히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鄕愁 homesick)보다는 좀더 강도가 높은 질병을 이르는 말로 이미 스스로 고향을 갈 수 없다고 느꼈을 때는 불치병이 될 수도 있다. 갈 수 없는 이유야 각각이다. 때로는 민족분단으로 실향민(김종휘) 또는 탈북자(선무)가 될 수도 있으며, 뉴타운 등 지역개발이라는 명목에 밀려나 얼떨결에 고향을 잃어버린 경우(강홍구, 정찬일, 이김천, 최호철)일 수도 있다. 먹고살기 위해 떠나온 고향과 미래의 삶을 걱정하는 노동자(이인철)도 있고, 구호가 적힌 거리의 설치물이 보이는 중국식당에서 바라본 눈빛(김건희)에선 전투기가 철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나마 아직도 남아 있는 따스한 인심을 찾으려는 노력(김주호, 오순환)도 있지만 쓰라린 과거 때문에 외면해야 하는 상황(임춘희, 노석미)도 있다. 또 고향 근처 여관 구석에서 나뒹구는 젊음(여승열)이 있는가 하면 붐비는 도심에서 억지로 한적함을 찾으려 애쓰는 장면(박홍순)도 있다. ● 꼭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향수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예 그리워 할 고향 자체가 없는 사람들의 아픔도 있다. 잠시 떠나온 것이 아닌 결여 또는 상실의 두려움과 그리움이 삶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 최금수

 


김종휘_寂村_캔버스에 유채_72.7×72.7cm_1972

 

 

Posted by 가회동60 GAHOEDONG 60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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