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xhibition/Review

Drawing for version 0.0 _ 김병관展 _ 2012_1222 ▶ 2013_0111

Drawing for version 0.0

0.0버전을 위한 드로잉

 

김병관 / KIMBYUNGKWAN / 金炳官 / painting

 

2012_1222 2013_0111 

 

초대일시 /2012_1222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 – 07:00pm / 일요일 휴관

 

GAHOEDONG60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www.gahoedong60.com

gahoedong60@gmail.com

 

 

 

Drawing #01_116.8x91.0cm_acylic on canvas_2012

 

 

 

 

0.0버전을 위한 드로잉

 

 

“이미지가 논리적으로 재조합 됨을 신뢰하는가?”

 

흔히나는 대상을 인식 하였다.’는 의미는 이미 두뇌에서 분석작업을 마친 순간을 말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반드시 이성적, 또는 논리적 분석 과정을 거쳐야만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인가?

만일, 논리적 재조합에 의해 구축되는 이러한 과정이언어로의 변환작업이라는 논제가 가능하다면, 이러한 의문이 가능하다.

 

“언어로 컨버팅 되기 이전의 대상은 과연 무엇인가?”

 

 

 

 

 

Drawing #02_116.8x80.3cm_acylic on canvas_2012.jpg

 

 

 

 

여기서 문제는 바로 컨버팅 프로세스에 대한 신뢰이다.

유감스럽지만, 견고해 보이는 이 시스템은 수많은 원인으로 매우 유동적이다.

(자신을 둘러싼 시대의 언어가 완전한 것이라 믿는 멍청이들이 있을까?)

그 어느 곳에서도 완벽한 컨버팅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으며, 아이러니 하게도 오직 확실한 것은 자신이 가진 시스템에 대한 무한한 신뢰뿐이다.

하지만 이 신뢰가 바로완전한 오해를 재생산 하는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다.

자기 신뢰에 대한 이러한 불신은 자신의 인식작용으로 인한 오해를 피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의지를 시작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지를 지닌 드로잉의 목적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주의해야 할 것은 순수, 원초적 등의 개념으로 향하면 오히려 구제받지 못할 오해로 귀결될 위험이 가중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개념들은 버전100쯤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자동기술법과는 관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의식의 과대포장으로 인한 퍼포먼스 일 뿐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뇌에서 작동되는 분석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기정도로 해두어도 충분하다.

 

드로잉을 통한 이 시도는 버전이 시작되기 이전의 상태,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닌, 분석과 오해의 시작전인 그곳으로 가기 위한 열망이며, 그곳이 버전0.0인 곳이다.

■ 김병관

 

 

 

 

Drawing #03_116.8x80.3cm_acylic on canvas_2012

 

 

 

Drawing for version 0.0

 

Images are able to recombine by logic?”

 

Normally, the meaning ‘A person recognizes an object.’ is the moment that the person finishes analysis about the object in his brain.

However, without any doubt, can we use these logical and analytic processes to aware object?

People have to ask about it themselves on the hypothesis that this logical recombining process is ‘Converting process through language’.

 

What is object before it is converted through language?”

 

At this point, an issue is trust about converting process.

Unfortunately, this process seems very stable but it is flexible because of numerous factors.

(Is there somebody who believes that language surrounding him is perfect?)

Integral converting system does not exist anywhere. Ironically, only true thing is boundless trust about system that people have themselves.

However, this trust is the main cause that occurs ‘Perfect misconception’.

Someone’s mistrust about his trust brings least will to avoid misconception by his cognition.  

 

Thus, where purpose of drawing with the least will goes?

The one thing that we have to give caution is if the will goes toward pure or basic instinct, purpose cannot be redress because of extreme misunderstandings. (Personally, this concept might be version 100.)

This does not rely on automatism since this phenomenon seems overwrapped performance of unconsciousness.

 

So far, I would like to say this is ‘untrustworthy analysis system by brain’

 

This attempt through drawing is not in a state before any version starts or people recognize an object, but it is a desire to reach the somewhere before analysis and misconception starts. Now, if we get there, the point is version 0.0.

By Kim, Byung kwan

 

 

 

 

Drawing #04_116.8x91.0cm_acylic on canvas_2012

 

 

 

한 순간 한 순간 마다 읽혀지는 김병관의 이미지들은 잡지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다름 없다.김병관의 드로잉을 보고 있노라면 아크릴 물감의 유전적 속성과 많이 닮아 있음을 느끼곤 한다. 빨리 마른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미술의 영속성은 전시되기 이전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한다. '전시'라는 장치보단 그려지기 전의 상태와 그려져 표현된 상태를 혼동해서 영구히 머물러 있게 만든다. 그림이 그림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움으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표방된 -Image- 일런지던간에.. 그런 그가 표현하고 그린 것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의 이미지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들 중 이번 전시에서는 그녀가 존재한다. 제일 먼저 내게 보여준 그녀의 이미지가 그가 그리고자 하는 그 무엇이련가? 하여간에...

 

그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라는 존재는 잡지 속에서만 머물러 있는 그런 존재일 것이나 사랑도 한다.

그는 그런 그녀를 사랑하고 어루만지면서 그녀의 따스함과 이국적인 모습에 비춰 엉뚱한 대화를 하는 상상을 할 것이다. 텅 빈 공간이 아닌 따스한 햇빛이 꽉 찬 넓은 평원 같은 공간이다. 미국의 컬트무비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드리 나무에 건조한 공기와 함께 그네(swing)가 매달려 있는 공원 같은 곳이다. 그런 곳에 그녀가 치맛자락 펄럭이며 띄어져 있고 그는 그녀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푼수끼가 다분하다. 아니,, 어쩜 일탈에 목적을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끔 엉뚱한 짓을 하는 그녀이다. 하지만 변화를 기대하고 있는 그녀이다. 그렇다고 어떤 무엇인가를 목적에 두지 않고 마냥 변화만을 기대한다. 어여삐 여겨봐야 맹하고 엉뚱하지만 밝은 웃음을 가지고 있는 그녀이다.

그는 가끔씩 그녀가 자신의 질문에 답해주기를 바라지만 질문이라는 것을 생각할 여력도 없이 그녀가 먼저 질문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질문이 질문 답지도 않다. 아니, 질문이라기 보다는 웅얼거림에 가깝다. '궁시렁'이라고 표현하자.

그녀의 '궁시렁궁시렁'이 가끔은 짜증나도 잘도 참아내며 받아준다던가 아님 모른 척 귓가 주변에 떠다니게 냅둔다. 알려고 해봐야 궁시렁일 뿐인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그는 모른 척 놔둘 수도 없다. 단 한가지가 항상 그의 마음을 사로 잡기 때문이다. 냉소적인 향기를 뿜어내는 그녀어떤 향기도 그 공간을 지배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내음을 풍기는 그녀의 체취. 그것에 그는 마음 한구석을 전부 빼앗기고 있다. 냉소적이며 어느 순간엔 이지적 이기까지 한 그 내음을 그는 뿌리칠 수가 도저히 없다. 어릴 적 어느 순간에선가 맡아본 것 같은 그 향기를 그는 지금의 현실공간에 가득 담고 있다. 마약보다도 더 강한 중독성을 가진 그녀의 향기가 어떤 다른 형태를 취하려는지 몸부림 치고 비틀며 이 세상의 원초적인 단세포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그는 그 순간, 그녀의 근본적 외로움과 함께 취하여 쾌락에 몸을 맡기고 있는 자신의 몸뚱아리 속 부정맥이 꿈틀거리는 모습까지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김병관의 작업은 단순성에 기인한다. 약간은 모순 되어진 작금의 미술계에 내러티브적 구성력을 보여주기에 미술적 사고방식에 기인하기보다는 오히려 연극이나 무용, 영화라던가 애니메이션이라하는 ''의 모습과 닮아있어 작품의 구조상 시놉시스의 비중을 더욱 많이 차지하고 있다. 화면에 뿌리는 물감이 있을 뿐이고 작품의 전개상 필요한 반전 부분이 있는 'Painting Show' 에 가깝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점이 이 작가의 가장 큰 매력이다. 현 미술계가 미술의 특정조건이 점점 불투명해지고 두꺼워진 상태에서 그의 작업들은 소스(sauce)자체가 두께감이 없다. 거둬낸 볏짚을 탈곡기에 넣어 껍질을 날려 까버리는 형국이다. 아니, 탈곡기는 그의 본 직업인 렌더링 같은 3D컴퓨팅을 하는 것이고 회화작업은 도리깨로 쳐내어 수작업으로 껍질을 분리하는 작업 같은 것이다. 쌀 도정의 단계적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쌀을 씻어 밥물에 앉히는 순간까지 자신이 원하는 입맛에 맞출 수는 있다. 문제는 불 조절인데역시나 전기압력밥통 보다는 무쇠솥이 밥하는 맛은 있듯이 뜸들이는 시간을 잘 맞춰놔야지 제 맛이 날 것이다. 그런데, 김병관은 미디어 아트라는 첨단 장르에서도 자신의 입맛을 조절 할 줄 아는 작가로서의 능력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소스가 다양한 것이 아니라 두께감이 없어야 가능한 일이다. 원재료의 맛을 알아야 소스와 와인도 마리아쥬가 가능해진다. 소스의 두께감이 두꺼워지면 원재료의 맛을 감춰 버리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미술보다는 영화가, 영화보다는 음악이 대중성의 득을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이유는 이 소스를 바라보는 대중문화의 취향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을 덮고 있는 이 미술덮밥이 영화덮밥보다 냄새로 보나 모양으로 보나 훨씬 두껍고 짙은 소스로 쳐 발라져 있고 음악덮밥은 영화덮밥보다 좀더 얇고 옅어서 본 재료의 성숙도를 가늠하기 쉬워져 있다. 멘토링이니 거시기니 하는 도제양성-시스템이 음악계에 자리 잡힌 이유도 음악이 가진 배음구조의 공감각적 유전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원음의 데이터베이스를 효과적으로 교육화 시킬 수 있을 만큼 공간의 두께감을 가지지 않고서도 보존력과 영속성을 지닐 수 있다. 축음기부터 MP3로 이어진 예가 대표적인 예인 것처럼 기본 속성 자체가 '0''1'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고 철저히 시간성으로부터 시작한 공간성과의 상관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시간예술에서 공간예술로 점유하는 공감각 증상을 소스로 대리하여 풀어나가기는 민망하다. 하지만 소스라는 것을 -양념- 으로 읽지 않고 속어로 읽으면 -건방짐- 쯤으로 사전적 해석이 가능한데... 두꺼운 소스일수록 건방떨기 민망한 쟝르라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까 얇을 수록 건방떨기 수월하여 본색을 드러내기 쉬운 것이리라. 이것이 현대 예술문화에서 장풍을 치느냐 마느냐로 귀결된다. 미술덮밥의 속성이란 것이 일단은 드러내기 보다는 깊이 감추어져 있어 자기들만 아는 <Rare-Arts scene>으로 장식되어져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마법을 걸어놓기 일수다. 이것 자체가 얼마나 특혜 받은자들의 향이 짙은 소스란 말인가? 어떻게 보면 참 건방진 소스로도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쉽게 그 밑에 있는 쌀알들은 건방 떨기가 무서울런지도 모르겠다.

 

김병관은 아주 얇은 소스를, 아예 소스 자체의 두께감이 없는 그 무엇인가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향기를 쫓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 시각적 냄새를 풍기려고 작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2 12, 망년회로 흥청거릴 즈음의 <김병관 원맨쇼>를 흥겨운 관심으로 건방떨며 들여다 보아주기를 바란다.  

POOky

 

 

 

김병관 Kim Byung-kwan

 

1998 한성대 회화과 졸업

2003-2006  JTEAM studio –“Aachi & Ssipak” 3D artist

2007- 3D Technical Director

 

2012  Drawing for version 0.0, 가회동60

2012  크리스털 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2012  6명의 수상자를 만나다, CJ E&M센터 컨테이너 전시장

2012  SIA MEDIA ART AWARDS-Finalist

2012  X-report, Gallery Aura 초대전

2011  New Discourse 우수작가 개인전, Cyart Gallery

 

 

Kim Byung-kwan

 

1998 Graduated Department of Painting, Hansung University (B.F.A)

Now, 3D Technical Director

 

Solo Exhibition

2012 Drawing for version 0.0, Gallery GAHOEDONG60, Seoul

2012 X-report, Gallery Aura, Seoul

2011 Finalist exhibition-New Discourse Fine artist selection, Cyart Gallery, Seoul

 

Group Exhibition

2012 Welcome to Cristal Room, SIA Media Art Awards Winner Exhibition, Seoul Museum of Art

2012 Meeting with 6 Finalists for SIA Media Art Awards, CJ E&M Center

 

Awards

2012 Finalist, SIA Media Art Awards

2011 Finalist, New Discourse Fine artist sel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