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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Review

담지도_정희우展 _ 2013_1115 ▶ 1130

담지도

정희우

2013. 11. 15 (금) – 30(토)

 

오프닝: 2013. 11. 15 (금) 오후 6시

전시후원: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개관시간: 오전 11- 오후7시 / 휴관일 없음

 

GAHOEDONG60 가회동60

www.gahoedong60.com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02-3673-0585

gahoedong60@gmail.com

 

 

 

 

 

 

 

담지도-이촌점보 _종이에 먹_부분_144x74cm_2013

 

 

 

 

 

 

시간의 가장자리에 있는 실재의 잔해들

 

2011년 강남대로의 4년간을 작품에 담은 시간을 담은 지도전을 열었던 정희우는 이번 에 담지도’(전시부제)를 시도한다. 이전 전시가 강남대로 양편에 스펙터클하게 펼쳐진 빌딩들을 그림 지도처럼 표현했다면, 강남의 오래된 아파트의 벽들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담아낸 이번 전시는 보다 구체적이고 미시적이다. 그러나 실재를 하나도 누락시키지 않고 지도로 완전히 덮어버릴 듯한 집요함은 여전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강남의 오래된 아파트 여기저기에서 제작된 80여장의 탁본 중 몇 개만 골라서 전시한다. 바위에서와 같은 길고긴 세월에 이루어지는 미시적 변화는 부드러운 종이 위에 그 흔적들을 새긴다. 강남대로 양편에 세워진 건물들이 시간의 축을 따라 전개되는 공간이었다면, 담 지도는 선택된 시간에 절개된 공간적 단면이다. 도로표시나 맨 홀 같은 바닥을 탁본해 오다가, 이번 전시에서 수직으로 이동했다. 수평이든 수직의 차원이든, 표면을 통해 깊이를 탐사하려는 방식은 같다.

 

담 지도에서 공간에 압착된 시간들은 지금은 그렇게 건축될 것 같지 않은 낯선 디자인과 크고 작은 흔적과 균열에 선명하다. 작품 [대치 선경]에서 방향을 달리하여 쌓은 벽돌들과 그 사이를 채우는 시멘트 조직은 최초의 그 반듯한 형태가 흐릿해져 있다. 맨 처음에는 선명하게 그어졌을 도로 위의 선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정형의 얼룩들로 해체되는 것처럼, 시간은 공간의 무질서도(entropy)를 증가시킨다. 전지 크기의 순지를 사용하여 담과 담구조물을 먹 방망이로 탁본하는 작업은 고고학처럼 실재를 베껴내는 방법이지만, 작가는 굳이 지도라는 용어를 썼다. 지도란 실재를 기호로 축소해야 성립되는 것이다. 이전의 강남대로 작업이 보는 것과 아는 것이 종합하면서 축소모델로 펼쳐진 것과 달리, 실재를 직접 떠낸 이번 전시의 작품에는 실재와 기호를 일치시키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시간이 만든 공간의 진면목이 있는 작품들은 상상만큼이나 현실도 기이한 구석들이 있음을 알려준다.

 

 

 

 

 

 

 

담지도-잠원한신타운_종이에 먹_부분_144x74cm_2013

 

 

 

 

 

 

탁본된 담들은 대개 1970년대, 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로,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지만, 공간의 파괴와 생성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토건국가의 특성상, 살아있는 유물이나 유적지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반석위에 새겨진 계명이나 오래된 비문 같은 유물을 읽기위한 고고학적 작업에 의해, 지금 여기의 사물은 수수께끼 같은 단편으로 변화한다. 요즘 지어진 아파트의 담이 전자 감시 장치와 결합된 물샐틈없는 요새 같거나, 열려있는 듯해도 조경 등으로 교묘하게 닫아놓는 것에 비한다면, 탁본으로 수집된 담들은 소박한 형태를 간직한다. 그 담들은 그 주변에서 벌어졌던 갖가지 추억들이 담겨 있다. 어릴 때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 온 이후, 30년을 넘게 살아 온 작가에게 아파트 및 아파트로 대변되는 주거환경은 이제 고향 같은 풍경이다. 정희우는 거기에서 한세대 동안 압축적으로 일어났던 강남의 변천사에 대한 산 증인으로, 시리즈 작품을 통해 괄목할만한 환경의 변화를 반영해 왔다.

 

그러나 다소간 있는 그대로의 즉물적 이미지는 변화에 대한 이런저런 감정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1984,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사 와서, 자연스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만큼 인공적으로 배열된 나무들과 아파트만 보였던 충격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강남의 변화상에 대한 작가의 입장은 좋고 싫고. 옳고 그르고를 초월한다. 거기에는 작가가 속한 환경에 대한 내부자적인 시선이 있다. 그곳을 무조건 비인간적인 회색빛 도시로 매도할 수 없는, 이미 그곳에 속해 있는 자의 시선인 것이다. 그것은 좋진 않지만 이미 추억이 되었다는 입장이다. 강북의 한 오랜 동네에서 반세기 가량 살아온 나는 아직도 아파트가 성냥 곽 같은 콘크리트 덩어리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 성장해온 세대들에겐 아파트도 오래된 마을 같은 시공간의 층위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시간의 축적에 의한 결과가 남아있는 담벼락 작업은 그 층위들을 섬세하게 복구하려는 시도이다.

 

 

 

 

 

 

담지도-서초삼호가든_종이에 먹_144x76cmx2_2013

 

 

 

 

 

먹 방망이로 두들겨 베껴낸 무채색 공간은 실제 대상인 낡은 담벼락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정희우의 작품은 3차원적 대상을 2차원적으로 변형시켰다는 점에서 그림과 비슷하며, 실제 대상과의 연관 고리가 분명해서 사진 같은 인덱스(index)적 특징으로 고고학적 증거의 역할까지도 가능할 법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림이나 사진과 같은 재현과는 다르다. 가령 작품 [잠원 한신 타운]처럼 주차금지 팻말을 달고 있는 담벼락의 경우, 글자는 탁본이 되지 않기에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 정면성에 충실한, 정교하게 베껴진 촉각적 표면은 사진으로 대변되는 현대의 시각적 관습과도 거리가 있다. 담지도에는 사물의 얼굴, 또는 몸이라 할 만 한 것이 있다. 다양한 인터페이스가 지배하는 요즘에는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지만, 시간의 변화를 표현하려는 이에게는 기하학이 아닌, 인간적 시야가 중요한 것이다. 눈높이에 맞는 옛 담들에는 그것들을 낀 길이 있었다. 옛 담과 길은 삶의 굴곡과 일치한다.

 

그러나 오래된 담처럼 길 역시 위기에 처해있다. 길은 갈수록 추상화 된다. 먼 우주에 떠있는 기계 장치의 도움이 없이는 눈 뜨고도 길을 잃기 십상이다. 오늘날 인간의 동 선은 다양한 정치경제학적 전략이 관통되는 인터페이스 상의 지도에 의해 규정된다. 아울러 아파트 이름과 호수, 그리고 평수는 즉각적으로 거주자의 사회적 위치를 알려준다. 작가가 고고학자의 관점으로 수집한 후미진 곳들에 있는 낡은 벽들과 달리, 오늘날 좀 더 중요한 자리에 있는 벽들은 매우 가변적이다. 현란한 래핑기술로 매번 그래픽이 바뀌거나, 매순간 움직이는 인터페이스로 변해있다. 도시학자들이 지적하듯이, 현대도시는 거대한 스크린이 되면서 모든 것을 뒤섞고 소비해 버린다. 갈수록 빨라지는 자본의 회전주기를 수용할만한 가변성이 없는 멍청한 물질적 덩어리들은 이제 존재 의미와 가치가 없어진 것이다. 담벼락들은 돌로 된 편지’(알라이다 아스만)인 고대의 비석처럼 서있다.

 

 

 

 

 

 

담지도-압구정한양_종이에 먹_144x74cm_2013

 

 

 

 

 

조경의 관념이 없던 시절의 그 생경한 강남 아파트촌이 준 충격은 이제 수 십 년의 세월을 함께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 조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는 즈음, 하나 둘 사라지려는 것들이 향수를 자아낸다. 1970-80년대, 가속도를 붙여가며 성장해온 근대적 도시 환경에서 고급주택 단지로 조성된 강남아파트촌은 변화의 첨단에 있었기에, 여기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성년의 체험이 반영된 작품들은 예술 뿐 아니라, 사회학적 역사적 중요성을 가진다. 작가가 더 어린 시절에 살았던 강북의 한 동네와 달리, 강남아파트촌은 자동차나 엘리베이터 등을 통해 수평, 수직적으로 통과하기에 더욱 적합하게 진화된 형태이다. 꼬불꼬불한 삼청동 길과 뻥 뚫린 강남대로를 걷는 기분은 완전히 다르다. 이런 근대적 배열은 상업시설이 아닌 장소에서는 보행자가 거리에서 머물고 모이는 기능을 억제한다.

 

이러한 낡은 구조물들은 목적지를 향해 빨리 도달하려는 소비자/행인의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작가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을 정교하게 재현함으로서 쌩쌩 돌아가는 현실의 이면을 보여준다. 시간의 흔적이 새겨진 낡은 벽은 몸의 체험과 무의식의 흔적을 알려주는 지표이다. 작가가 주시하는 존재감 없는 담들은 전형적인 아파트의 부속물이기 보다는, 생물로 친다면 흔적기관에 가깝다. 빌딩 위에 얹은 기와 같은 절충적 모습이라고나 할까. 집에 상표를 붙이고 야간조명을 하는 강남의 아파트는 집이기 보다는 상품으로 보이며, 그것이 상품인한 소비욕망의 회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반면 정희우가 탁본으로 수집해서 배열한 담 지도들은 과연 그곳에서 나온 산물인가 싶을 정도로 또 다른 시공간에 속해있는 듯하다. 파괴와 창조를 동일시하는 무자비한 개발자로서의 현대와 달리, 보들레르 같은 시인이 활동하던 초창기 현대에는 일시성과 영원성의 균형이 강조되었다.

 

 

 

 

 

 

담지도-신천장미_종이에 먹_144x76cm_2013

 

 

 

 

 

정희우의 담 지도는 현대성의 한 날개인 영원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개발의 주기로부터 면제되거나 지체된 장소이며, 어느 날 개발자에 의해 무너지는 순간까지 바위 같은 묵직함으로 그곳을 지킬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덧없는 일시성의 비중은 높아간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현대성의 양면에서 일시성의 비중이 높아지는 탈근대의 경향을 분석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액체 근대]에서 근대적이라는 것은 멈출 수 없다는 것, 가만히 서 있기는 더욱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듯이, 변화는 현대의 영원한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정희우의 오래된 담들은 변화의 지속가능성을 묻는 듯하다. 고도 성장기를 지난 한국사회는 과거와 현재를 한순간 깔아뭉개는 무조건적 개발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미 변화를 앞서갔던 강남 지역은 오히려 고풍스러운 면모까지 보인다. 화려한 반짝임만 있을 것 같은 그곳에서 작가는 유적지나 폐허 같은 장소를 발굴한다.

 

역사와 추억이 남겨질 틈 없이 세워지자마자 낡아지는 것 그것이 현대 도시의 실제 모습이다. 한국사회의 여러 경계를 만들어냈을 그 벽들은 더 효과적인 새로운 경계들이 생겨나면서 뒤안길에 남아있지만, 사라져가는 것들을 통해 그 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램 질로크는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에서 현대성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쇠퇴로 본다. 시대에 뒤떨어진 대상은 상품, 도시 내의 상품 생산 과정과 교환, 소비를 탈물신화하고 탈신화화 한다. 유행에 뒤떨어진 물건은 유행의 현실을 폭로하듯이, 대상의 참된 내용은 소멸될 때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파트촌으로 구현된 한국사회의 집단적 욕망과 상품에 대한 유토피아적 요소들은 상품의 쇠퇴에서 드러난다. 현재의 폐허들로 나타나는 표면이 부서져 내릴 듯한 오래된 담벼락은 이미 낡아버린 현대성을 보여준다. 탁본을 통해 구현된 사물은 도시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현대성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해독 대상이 된다.

 

 

 

 

 

담지도-여의한양_종이에 먹_142x74cm_2013

 

 

 

 

 

담지도가 해독되어야할 필연성은 그것이 인간이 살아온 흔적들에 대한 단편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수집된 단편들을 통합하지 않고 이미지 모음집처럼 계속 축적한다. 그것들은 모자이크 박편처럼 모여서, 이전의 강남대로 4년간의 기록전과는 다른 차원에서 도시에 대한 파노라마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마치 고고학에서의 금석문처럼 탁본된 이미지는 기호학적 대상이 된다. 정희우의 담지도는 지도처럼 일반 언어와 달리,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적이지는 않음을 알려준다. 작업실에는 정가 2000원이 붙은 지번 약도 책이 있다. 작가가 참조하는 자료가 나타내듯 담 지도에는 지도의 모델이 있다. 그것은 어떤 지역의 재현이지만, 전형적인 재현의 양식인 원근법이나 사진과는 다르다. 전형적인 재현의 양식이 육체의 체험이 배제된 외눈박이 시점이라면, 정희우의 탁본작업은 시간의 흐름을 타는 육체의 움직임이 깔려 있다.

 

그것은 우선 점에서 점으로의 추상적 이동이 아닌, ‘도시의 고독한 산책자-고고학자’(벤야민)의 이동이 전제되며, 두들기는 작업을 통해 완성됨으로서 시간성이 개입되고, 이를 통해 고정된 단일한 눈에 내재된 관념적, 기하학적 공간과 구별된다. 대규모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원근법이나 사진에 내재된 초월적이며 보편적인 시야가 필요한 반면, 고고학의 대상이 된 현실의 단편에 접근하는 작가의 방식의 모델은 부분에 충실한 지도이다. 구체적인 장소가 제목으로 드러나 있는 그것들은 지도처럼 어느 지역을 지시하기는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는 불확실하다. 마치 선사시대의 유적처럼 말없는 기호에 직면하게 할 뿐이다. 표면에 남겨져 종이에 옮겨진 흔적들에는 예전의 삶과 행동의 존재를 암시한다. 지도처럼 평평한 표면에 베껴진 사물의 표면은 풍부한 질감을 가진다. 이 지도는 축약되지 않고 실제 크기를 보존하는데, 그것은 장 보드리야르가 [시뮬라시옹] 서두에서 인용한 보르헤스의 우화 속 지도와 비견될 만하다.

 

그것은 시뮬라시옹의 가장 좋은 비유로서 제국의 지도 제작자들이 극도로 정밀한 지도를 만들어서 결국은 지도가 제국의 전 영토를 거의 정확히 덮어버리고 만다는 우화이다. 그러나 제국의 쇠퇴는 차츰차츰 이 지도가 닳아 없어지는 것을 보게 되고, 결국에는 몇몇 조각들만이 폐허 위에 나뒹굴고 있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옛 우화와 달리 현대의 시뮬라시옹은 더 이상 영토, 그리고 이미지나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 또는 어떤 실체의 시뮬라시옹이 아니다. 오늘날 시뮬라시옹은 원본도 사실성도 없는 실재, 즉 파생실재를 모델들을 가지고 산출하는 작업이다. 이제는 지도가 영토에 선행하고 심지어 영토를 만들어낸다. 지도가 아닌 실재의 잔해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실재 그 자체의 폐허에 이른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지도나 영토의 문제가 아니다. 추상의 매력을 낳았던, 어떤 것에서 다른 것 사이에 개재되었던 다름이 사라져 버렸다.

 

 

 

 

 

담지도-대치선경_종이에 먹_144x74cm_2013

 

 

 

 

 

우발적 사건들의 흔적이 있는 담 지도는 사라진 또는 곧 사라질 실재에 대한 매력이 있다. 코드에서 코드로 동일 증식하는 현대적 방식과 달리, 여기에는 다름이라는 실재의 매력이 남아 있는 것이다. 반면에 변화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된 신호기계는 모든 실제 과정을 저지하곤 한다. 지도와 영토를 이상적으로 일치시키려는 지도제작자들의 광적인 계획 속에서 절정을 이루고 또 수그러든 재현적 상상세계는 시뮬라시옹 속에서 사라진다.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실재는 이제는 조작적일 뿐이다. 갈수록 조작적 현실이 더욱 커지기에 담 지도의 단순 소박함이 더욱 돋보인다. 거기에는 시간과 기억이 담겨있다. 알라이다 아스만은 [기억의 공간]에서 장소에 내재되어 있는 기억의 힘은 위대하다라는 키케로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키케로가 속한 고대와 달리, 유동적인 현대는 장소와 연관된 위력과 마력으로부터 벗어난다.

 

아스만에 의하면 현대성은 땅과 연관된 기억을 파헤친다. 합리화는 장소를 벗어난 유동성을 고무했고, 이를 통해 현대적 진보가 이루어졌다. 흔적을 유지하고 망각의 그늘에서 기억 장소를 표시하려는 노력은 탈근대의 움직임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억과 공간]은 기억이란 오래전에 사라졌거나 상실되어 버린 것의 인공적 대체일 뿐만 아니라, 망각과 억압에 대항해 자기를 관철시키는 힘임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장소를 전통과 역사로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소도 사람들의 삶의 형식과 경험의 형식을 규정짓는다. ‘시간의 형식’(조지 쿠블러)을 담지 한 이미지는 공간으로 형상화된 시간이다. 그 장소에서 하나둘씩 해독할 수 있는 역사의 위상도가 만들어진다. 동시대인들의 다수가 현재 속에서만 살고 있는 동안 작가는 과거를 부활시킨다. 장소를 과거의 말없는 증인으로 표명하게 하고 그런 장소에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게 하려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이 폐허에서 예술과 자연의 결합을 보았듯이, 유적지처럼 나타나는 낡은 담들은 인공물이지만 자연의 속성을 담지 한다. 사람들이 망각하면 할수록 장소들과 유물들은 더 많은 아우라를 갖게 된다. 정희우의 방식은 다른 매체로는 재생산할 수 없는 장소의 아우라를 창조한다. 이 기억의 매체는 보이지 않는 과거를 제시하고 그 과거와의 접촉을 유지한다. 탁본이라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은 아주 먼 것을 아주 가까운 곳으로 가지고 온다. 반대로 아주 가까운 것을 먼 곳으로도 보낸다. 가깝고도 먼 것의 독특한 결합은 이것들을 아우라가 있는 장소로 만든다. 작품화된 기억의 장소는 감각적 현재를 역사적 과거와 서로 얽어 짜는 공간과 시간으로 짜인 특수한 직조물’(벤야민)이다. 기억의 장소와의 접촉을 야기하는 정희우의 담 지도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그것은 타자들과의 접촉의 공포’(리차드 세넷)에 기반 하여 건설된 현대의 공간과는 이질적이며, 근대의 유토피아에 대항하는 헤테로피아의 비전을 보여준다.

 

 

 

 

희우

JEONG HEEWOO

 

2011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미술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0  MFA,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Art

1997  BFA,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개인전

 

2013년  담지도, 가회동60

2013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 아트스페이스53

2012  Peeling the City, 부띠크모나코미술관  

2011  시간을 담은 지도-강남대로 4년간의 기록, 노암갤러리

2009  강남대로 고현학, 문신미술관 빛갤러리

2008  강남대로 387-424, GS타워갤러리

2004  주독 한국대사관, 베를린, 독일

2004  Jugend Medien Festival, Die Weisse Rose, 베를린, 독일

2002  RGB Show, 갤러리 룩스

2000  Show in D301, Gallery D301, 캘리포니아, 미국

1999  Through the Looking Glass, Mint Gallery, 캘리포니아, 미국

       

     

단체전

 

2013 오늘의 진경2013, 겸재정선기념관

           Day Off, 호연갤러리

     미묘한 도시, 그 곳의 온도, 유중아트센터

     Shedding of Culture, The Substation, 싱가포르

     이원전, 갤러리 봄, 과천 

     플랫 테이크 원, 강남역 아이파크 상가층 

     일시적 점거자, 도하프로젝트  

2012  이원전, 스페이스599  

     [ ], 문래예술공장

     Sub-Mullae 2012 In-Progress Presentation, 싱가포르

           Cotton Born to Live Twice, 동덕여자대학교 미술관

2011  중심전, 충무아트홀 갤러리

           초록, 공아트스페이스

           花水木, 장흥아트파크

           유쾌한 한국화, 즐거운 조각, 부평아트센터

           서동요, 부남미술관

           쥐뿔스튜디오2011,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2010  오감도, 서울대학교 미술관

           이원전, 공아트스페이스

           아트 다이얼로그, 스페이스599

           한국화의 이름으로, 포항시립미술관

           쥐뿔스튜디오2010,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2009  정희우. 김봄 2인전, +인큐베이터

           한국화의 현대적 변용, 예술의 전당

2008  원유 인스톨레이션, 시네마디지털서울

2007  폴드07, 테이트 브리튼, 런던, 영국

2006  페트라크리스챤대학교-동서대학교 교수교류전, 인도네시아

2005  페트라크리스챤대학교-동서대학교 교수교류전, 인도네시아

2004  스틸 모션, 서울뉴미디어아트페스티벌, 일주아트하우스

2002  얼터너티브 포토그라피, 상명대학교 예술대학원 갤러리

            새로운 형상과 정신전, 덕원갤러리

2001  옥토버 인터내셔널 컴퍼티션, 아모리 아트센터, 플로리다, 미국

2000  오픈 쇼, 갤러리825, 로스앤젤레스, 미국

 

 

수상경력

 

2013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시각예술 프로젝트 선정

2011  서울문화재단 시각예술창작활성화 지원 선정  

2001  어워드 오브 메리트, 옥토버 인터내셔널 컴퍼티션

 

작품소장

 

문신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