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Brush Strokes

By Shin Minjoo

 

신민주展 / SIHNMINJOO / 辛旻炷 / painting

2012_0509 ▶2012_0522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509_수요일_06:00pm

가회동60 기획전

관람시간 / 12:00pm-7:00pm / 일요일 휴관

 

가회동60 _ GAHOEDONG60

서울 종로구 가회동60번지

Tel. +82-2-3673-0585

www.gahoedong60.com

gahoedong60@gmail.com

 

 

 

긋다 13-1 72X100cm acrylic on canvas_2012

긋다 13-1 72X100cm acrylic on canvas_2012

 

 

 

 

긋다 _ 나무, 또는 붓 사이로 부는 바람 전시서문 중에서 ● 신민주의 그림에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그 바람은 볼을 어루만지는 산들 바람은 아니다. 휭 한 공허한 바람도 아니다. 그것은 거세게 밀쳐오며 시계(視界)를 제로로 만드는 빠르고 거친 바람이다. 휙 지나가는 바람 중 몇 가닥은 액화되어 바닥없는 심연으로 뚝뚝 떨어진다. 신민주의 그림은 고체적인 단단함이 부족하다. 뿌리와 지반과 근거가 없다. 격렬한 기체적 요소와 급랭하여 수평으로, 또는 수직으로 흐르는 액체적 요소만 있다. 그녀의 그림은 바람 속에 서 있는 나무처럼 바깥에 있다. 단숨에 강하게 밀어붙여 거의 수평으로 흐르는 선들은 바람과 더불어 있었을법한 것들을 모조리 흐릿하게 만든다. 세계를 다채롭게 빛냈을 모든 색들이 뒤섞여 뭉개진 듯한 회색조의 색상은, 그리기 보다는 지우는 선/면에 근접하게 한다. 이러한 파국적인 붓질아래 겨우 살아남은 것은 나무인 듯 보이는 한두 줄기의 선이다. 이 수직의 실체 또한 확실치 않지만, 등산을 자주하는 작가에게 이 선적 요소는 일차적으로는 나무임에 틀림없다. 꼭 나무가 아니더라도. 그것은 바람 속에 무언가 있다는 암시를 준다. 지상에 서있는 수직의 요소가 인간을 연상시킨다고 할 때, 그것은 나일 수도 있고, 너일 수도 있다.

 

 

 

 

 

긋다 41 123X107cm acrylic on canvas_2012

 

긋다 42 123X107cm acrylic on canvas_2012

 

 

 

 

그것이 어떤 존재이든 집착과 연민으로부터 벗어난, 지금 여기의 갱신을 위해 저 편에 있어야만 한다. ‘나를 만나야만 그려지는 그림’을 위해 일상의 나는 사라져야 한다. 바람 속에 언뜻 암시되는 나무는 대지에 깊이 뿌리를 내리며 태양을 향하여 힘차게 가지를 뻗고 그 위에 풍성한 잎을 거느리는 나무의 원형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종종 화면 아래가 비워져 있어, 어딘가에 그저 걸쳐 있거나 꽂혀 있는 듯한 가느다란 나무는 세계 다수 민족의 신화적 상상력을 보편적으로 추동했던 우주목이나 세계수같은 기념비적 면모를 갖추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여기를 초월하게 해주는 수직 방향의 연결망, 즉 서로 다른 차원들을 연결하는 나무에 내재된 본질적 이미지는 간직한다. 나목은 거센 바람을 견디어 내려는 한 방편으로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수평의 바람을 맞고 있는 수직의 나무는 서로 다른 쪽을 향하는 힘을 가늠하는 좌표계가 된다. 그것은 또한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는 황망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모노톤의 색상, 그리고 아무런 계산도 구상도 없이, 단지 기(氣)를 모아 종이나 캔버스 위에 단번에 그어진 필획들은 서예 같은 느낌도 준다. 영화의 스크린이나 창문의 이미지가 있었던 이전 작품에서 일련의 단절과 연속성이 있는 이번 전시의 그림들은 작년 가을부터 시작되었다. 작품은 수직, 수평의 구성, 그리고 블랙과 화이트, 약간의 브라운으로만 채워졌다. 이전 작품에서 벽과 바닥에 금가 있던 가는 선들은 이번 전시에서 굵은 획으로 자라났다. 미세한 공기의 진동이 모여 토네이도가 되듯이, 작가는 스스로 깔대기가 되어 작은 흐름들을 모으고, 나비효과 같이 그 힘이 실현되는 장을 마련한다.

 

 

 

 

긋다 5 177X137 acrylic on canvas_2012

 

 

 

 

넓은 평 붓으로 한 호흡에 아무런 기교와 꾸밈없이 그어진 시원한 선들은 기계적 반복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결연한 의지이며, 그 의지가 성공적으로 관철되었을 때 정화가 된다. 사전 스케치는 물론 수정과 가필 없이, 아크릴 물감이 마르기 전에 숨차게 해치우는 작업에서, 튐과 흐름 같은 우연성 또한 작품을 이루는 요소로 포용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선의 농담과 강약은 재현이나 표현, 구상이나 추상같은 궁색한 범주로는 포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낳는다. 그것이 향하는 지점은 아마도 자유일 것이다. 삶의 유지와 재생산에 주력하는 일상은 반복적이지만, 그림 속에서 작가는 매일, 그리고 매순간 다르게 변모할 수 있다. 그것이 작업에 몰두하는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이유이다. 작가는 ‘사는 것은 내 맘대로 되지 않지만, 그림은 내 맘대로의 방식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민주에게 그림은 여가선용이나 자아실현 같은 것이 아니라, ‘그리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하는’ 운명적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그녀의 그림에는 단호하고 비장한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그림에 과도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작가는 ‘자기 구휼(구원)으로서의 글쓰기’를 인용한다. 무한히 반복되는 무위의 몸짓은 ‘나 하나라도 구하는’ 만족감을 낳을 것이다. 이번 전시 작품의 단초가 되었던 것은 한강변의 다리 그림자와 물이 넘실대는 듯한 환영(illusion)이다. 환영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에 푸른 줄을 그었고, 화면 맨 아래에는 그림이라는 것을 감추지 않기 위해 빈 바탕을 남겨 두었다. 떨어지는 물감을 받아내는 이 공간은 우연도 품어주는 넉넉한 여백이 되었다. 무의식적이고 수동적인 가로선을 관통하는 세로선은 의식과 능동적 요소였다. 그 안에는 기하학적으로 그어진 청색의 원근법적 공간을 작게 띄워놓기도 했다. 묘사와도 표현과도 거리는 있지만, 신민주의 그림은 자연 및 자신 속의 자연에 충실하다. 원근법을 꽃피웠던 르네상스의 대가들이 차후에 발견하였듯이, 자연에서는 서로를 명확히 구별하는 선이 발견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물체의 윤곽은 그것의 일부분이 아니라, 그것과 접하는 다른 물체의 시작’임을 발견했다. 자연에는 윤곽선이 아니라, 단지 명암의 이행이 있을 뿐이다. 그리기와 칠하기, 그리고 지우기가 일체화된 신민주의 작품에서 색과 구도의 한정은 단조로움을 낳는 추상적인 환원이 아니라, 흑백의 계조가 다채롭게 펼쳐지는 게임의 장이 된다. 묘사나 표현으로부터 벗어난 신민주의 선(면)은 무엇인가를 지시하거나 실어 나르지 않는다. 그것은 최소한의 조형적 요소로 강도와 밀도를 무한대로 변형시킬 수 있는 민감한 표면이다. 이 유동적인 표면에서 변화는 멈추지 않으며 또 다른 변화가 추동될 뿐이다. 여기에는 매끈한 공간을 그려내는 활주하는 선들이 있다. 활주는 때로 탈주가 된다. 작은 해방구이기도 한 연희동 작업실에서, 탈주하는 선들은 판 전체를 덮고, 그 위를 또 덮을 때까지 계속 늘려진다.

 

 

 

 

 

긋다 14 130X160cm acrylic on canvas_2012

 

 

 

 

신민주의 그림은 점에서 점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궤적에 점이 종속되는 매끈한 공간과 관련된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에 의하면 이 매끈한 공간에서는 형식이 질료를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들이 힘들을 지시하거나 힘들의 징후 노릇을 한다. 이것은 외연적 공간이 아니라 강렬한 내포적 공간, 측량의 공간이 아니라 거리의 공간이다. 정확히 위치 지워지는 점들을 무화시키는 선은 움직이는 방향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선은 재현에 복무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변모할 뿐이다. 그것은 멈추지 않고 탈주를 꾀하는 유목민적인 선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유목민적인 선을 ‘비유기적이지만 생생하게 살아있으며, 비유기적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정의한다. 변화되는 이 선들은 유기체들을 가두어 두었던 선들을 해방시키고, 모든 것을 가로지르는 흐름으로 만든다. 저자들은 ‘선이 도주적인 이동성을 통해 기하학에서 벗어나면, 이와 동시에 삶도 제자리에서 소용돌이치고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면서 유기적인 것에서 몸을 뺀다’고 말한다. 스크린이나 창틀이 등장하던 이전 작품에 이미 내재해 있던 재현주의에 대한 거부는 이 전시에서 퍼포먼스에 가까운 몸짓으로 강도를 더 높였다. 일기 쓰듯이 매일 수없이 그어댄 선들은 그자체가 형태이며 바탕을 이룬다. 동시에 그것은 무형태이며 무바탕이다. 이러한 반복의 특징은 계속되는 불일치이며, 재현의 동일성에 대립된다. 플라톤으로부터 출발한 재현주의를 극복하려는 들뢰즈와 가타리는 <차이와 반복>에서 자유롭고 야생적인, 혹은 길들여지지 않은 차이들의 다원주의를 주장한다. 그들은 보수적 질서와 창조적 무질서의 차이를 강조한다. ■이선영

 

 

 

 

긋다 37 123X150cm acrylic on canvas_2012

 

 

긋다 47 123X150cm acrylic on canvas_2012

 

 

 

 

From Art Critic of 'Drawn' _ Wind Blowing between Trees or Brush Strokes ● The wind is heard in Shin Min-joo’s painting - neither a breeze nor an empty wind. The wind is a gale; a rough, violent wind that makes visibility zero. Some puffs of wind become liquefied and flow down to a bottomless abyss. Shin’s painting lacks solidness, without roots, base, or foundation. There are only gaseous, liquid elements flowing horizontally or vertically. Her painting is outside like a tree standing in the wind. Almost-horizontal, flowing lines make all blurred with the wind. The gray, engendered with a mixture of all colors, probably making the world look bright and splendid, deletes lines and planes rather than existing as drawing. Things barely surviving from this destructive brushwork are one or two lines that seem to be a tree. This vertical, lineal element is unclear, but may be a tree, as she often goes to mountains. It may not be a tree, but implies there is something in the wind. If the vertical element reminds viewers of a human being, he may be I or you.

He has to stay over there for renewal here and now, breaking away from obsession and pity. The daily I should be deleted for ‘painting that can be produced only if I meet myself’. The tree suggested in the wind is not the original, typical form of a tree that roots deep, spreads stems toward the sun, and has thick leaves. A thin tree dependent on somewhere or stuck does not have a monumental appearance like a comic tree or world tree that inspires a universal, mythic imagination. But, it has the essential image of the tree linking different dimensions vertically, transcending here and now.

The naked tree relies on the wind blowing as a way to endure this fierce wind. The vertical tree facing the horizontal wind heads for different directions, generating a bleak, precipitous atmosphere. Shin’s painting seems like calligraphic work with monotones and brushwork made by one stroke on paper or canvas without calculation and conception. In her previous work Shin depicted theater screen and window image, but from last fall she embarked on works with severance and continuity. The works on display at the show are filled with black, white, and brown in the horizontal, vertical composition.

Thin lines like cracks on the wall or floor in her previous work grow to thick lines in the exhibition. As minute air vibrations turn to a tornado, the artist collects small streams, and offers a forum where their force is achieved like a butterfly effect. For Shin confined to daily life as we all are, the forum where the force is generated is her painting.

The fresh lines artlessly drawn with a flat brush are an expression of her will not to rely on mechanical repetition. If this will is successfully attained, her work represents purification. Shin hurriedly creates images before acrylic paint dries without depending on sketch, modification or correction. As a result, her work consists of the chance factor derived from splattering and flowing. The light and shade, strength and weakness of lines rendered by this process bring about something not defined by the poor categories of reproduction and representation, figuration and abstraction.

She perhaps seeks freedom through this expression of lines. Although everyday life is repetitive, the artist can change herself everyday or moment in her painting. That is why she immerses herself in her work. “I cannot live as I want, but I can depict my painting as I want,’ Shin says. For the artist, painting is not to make good use of spare time and achieve herself, but is like something fateful she has to do to live. So, her painting like a stream exudes a determined, grim tone. However, Shin does not rely heavily on painting, saying writing is an act of self-salvation. A non-doing action repeated endlessly may bring about satisfaction to save ‘only me’.

The clue to works on display comes from the shadow of a bridge over the Han River and the illusion of surging water. Shin draws a blue line to be away from this illusion, and leaves the bottom of her painting empty. This space accepting dropped paint is a blank space embracing chance. The vertical lines penetrate the unconscious; the passive horizontal lines are conscious and positive. A small blue perspectival space rendered geometrically is within these lines.

Shin does not depict or express images, but is faithful to nature or nature within her. As Renaissance masters who developed perspective discovered, no distinctive lines are in nature. Leonardo da Vinci discovered, ‘An object’s outline is not its part but a beginning of another object contacted with it.’ There is only light and shade, not outlines in nature. In Shin’s work, drawing, painting, and deleting integrate; restrictions in the use of color and composition does not reduce to abstraction, generating a monotonousness, but create a field where black and white tones unfold diversely. Her lines and planes do not refer to or convey something: they are a minimal expressive element enabling infinite modification of intensity and density. Changes continue on this fluid surface, triggering more change. There are gliding lines generating a sleek space. At her studio in Yeonhui-dong, Seoul, a small haven, these gliding lines repeat and extend until they cover a whole plate.

Shin’s painting is not a procession from a dot to another, but related to a sleek space where dots are subordinate to a trajectory. According to A Thousand Plateau by Giles Deleuze and Felix Guattari, in this sleek space form does not organize material but material refers to or becomes a sign of power. This is not a denotative but a connotative space, not the space for measurement but for distance. The lines nullifying dots with fixed positions are just moving to some directions. They are just changing without contributing to any representation. The lines are nomadic as they would not stop and try to escape. Deleuze and Guattari define the nomadic lines as ‘the lines that are inorganic and alive with vitality as they are inorganic’. The changing lines liberate the lines confining organisms, and create a stream crossing all. “If lines escape from geometry through nomadism, life swirls at its place, and depart from something organic, constantly altering their appearances.” Deleuze and Guattari argue.

Shin’s rejection of representationalism inherent in her previous work, featuring screens and window frames, appears more intensive in the exhibition as a gesture close to performance. Lines are drawn everyday as if writing a diary shape form and ground, and at the same time are formless and groundless. The feature of such repetition is continued incongruity, confronting the sameness of representation. Deleuze and Guattari who attempted to overcome representationalism initiated by Plato assert a pluralism of liberal, wild, untamed differences in <Difference and Repetition> (Différence et repetition). ■ Lee Sun-young

 

 

 

 

신 민 주

 

1996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 회화전공 졸업

1993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개 인 전>

2012 ‘Brush Strokes', 갤러리 가회동60, 서울

2012 ‘긋다'_나무, 또는 붓 사이로 부는 바람, 누오보 갤러리, 대구

2011 ‘Facing the window2’, 갤러리 온, 서울

2010 ‘흐르다’, 갤러리 룩스, 서울

2008 ‘Facing the window’, 문화일보 갤러리, 서울

2003 ‘Walking-바닥 그리고 벽’, 갤러리 아티누스, 서울

1995 ‘Walking’, 관훈 갤러리, 서울

1992 1회 개인전, 관훈 갤러리, 서울

 

<단 체 전>

2010 Wonderful pictures, 일민 미술관

2006 Korea Artist Festival, Knapp Gallery, London (갤러리 온 기획)

2005 Das Unheimliche, 갤러리 온 (배남우 기획)

2003 티핑 포인트, 관훈 갤러리 (장경호 기획)

1998 한국 현대미술 신세대 흐름 ‘프레임 혹은 시간-사진으로부터’,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98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 금호 미술관 (류병학 기획)

1997 텍스트로서의 육체, 금호 미술관 (박영택 기획)

 

 

SIHN MINJOO

1996 Graduated from Fine Art dept. the graduate Hong-Ik

1993 Graduated from Fine Art dept. Hong-Ik Univ.

 

<Solo Exhibition>

2012 'Brush Strokes', Gallery Gahoedong60

2012 'Wind Blowing between Trees or Brush Strokes', Nuovo Gallery

2011 ‘Facing the window2’, Gallery On, Seoul

2010 ‘Flow’, Gallery Lux, Seoul

2008 ‘Facing the window’, Munwhaillbo Gallery, Seoul

2003 ‘Walking-ground and wall’, Artinus Gallery, Seoul

1995 ‘Walking’, Kwanhoon Gallery, Seoul

1993 Graduated from Fine Art dept. Hong-Ik Univ., Seoul

1992 The 1st solo exhibition, Kwanhoon Gallery, Seoul

 

<Group Exhibition>

2010 Wonderful Pictures, Ilmin museum, Seoul

2006 Korea Artist Festival, Knapp Gallery, London

2005 Das Unheimliche, Gallery On, Seoul

2003 Tipping Point, Kwanhoon Gallery, Seoul

1998 The New Generational Tendency in Korean Contemporary Art ‘Frame or time-From photography’,

          The Korean Culture and Art Foundation

1997 BODY AS TEXT, Kumho Museum Of Art, Seoul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 #북촌로11길 5#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가회동60 GAHOEDONG 60 트랙백 0 : 댓글 0